우리는 귀로 소리만 듣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듣는 것뿐 아니라 공간도 해석한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귓바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조각한 듯한 굴곡이 이어진다. 가장 바깥을 따라 도는 곡선이 ‘이륜(helix)’이고, 귓구멍 앞에는 ‘이주(tragus)’라는 작은 돌기가 있다. 이륜의 안쪽으로는 두 줄기처럼 갈라지는 ‘대이륜(antihelix)’이 있는데, 특히 위아래 방향의 소리를 구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귓바퀴는 고주파를 반사시키는 하나의 음향 렌즈처럼 작동한다. 굴곡마다 반사되는 각도와 주파수가 다르다. 뇌는 이 차이를 통해 소리의 방향과 높이를 해석할 수 있는 단서를 얻는다. 덕분에 우리는 눈을 감고도 소리가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알 수 있다.
옆에서 나는 소리는 양쪽 귀 사이의 시간차와 크기차로도 구분할 수 있지만, 위아래에서 나는 소리는 귓바퀴의 굴곡이 만들어내는 공명 패턴 없이는 감지하기 어렵다. 즉, 수직 방향 감지에서 귓바퀴는 사실상 유일한 해석 장치다.
귓바퀴가 없다고 해서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고막과 내이(달팽이관)가 정상이라면 기본적인 청력은 유지된다. 하지만 소리의 방향이나 거리, 질감 등을 해석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위층에서 나는 발소리, 머리 위로 날아가는 물체 소리 등은 구분이 쉽지 않다.
실제로 어떤 사람에게 귓바퀴의 형태를 바꾸는 플라스틱을 붙이면 소리의 방향 감지 능력이 감소한다. 하지만 뇌는 놀라운 적응력을 보인다. 며칠에서 몇 주가 지나면 새로운 공명 패턴을 학습해 다시 방향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우리 뇌는 소리 그 자체보다 소리의 ‘형태’를 기억하며, 귓바퀴가 만들어내는 공명의 질감을 하나의 지문처럼 인식하는 것이다.
동물들은 이 기능을 훨씬 더 극적으로 활용한다. 고양이는 귀를 독립적으로 회전시켜 실시간으로 사방의 소리를 추적한다. 박쥐는 초음파를 날린 뒤 그 반향을 양쪽 귀로 수신해 사물의 거리와 형태, 속도까지 감지한다. 올빼미는 양쪽 귀의 위치가 다르게 생겨 있어, 수직 방향의 소리 도달 시간차를 분석할 수 있다. 동물에게 귀는 청각을 넘어선 생존의 레이더다.
인간은 귀를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는 없지만, 귓바퀴의 복잡한 굴곡만으로도 정교한 공간 해석이 가능하다. 건축가가 빛과 그림자를 계산해 공간을 설계하듯, 귓바퀴는 소리의 입체 구조를 계산하는 생물학적 조형물이다.
문 뒤에서 들리는 인기척, 나무 사이로 새어 나오는 바람 소리, 위층에서 쿵 떨어지는 무언가의 파열음. 이 각각의 소리는 단순한 진동이 아니라 위치, 거리, 방향, 질감이라는 복합 정보를 담고 있다. 귓바퀴는 바로 그 실마리를 수집하고, 뇌는 그것을 공간적 사건으로 변환한다.
우리가 귀를 단지 소리를 듣는 기관으로만 여긴다면, 그 기능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귀는 듣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기관이다. 그리고 그 해석의 중심에는 소리보다 더 복잡한 세계—공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