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노쇼(no-show)도 경제가 되나요? 호텔경제학의 착시

news1657 2025. 5. 2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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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미지 사진 100

 

최근 한 대선 후보가 유세 중 호텔경제학이야기를 꺼냈다. 한 관광객이 호텔 예약금 10만 원을 맡기고 방을 보러 간다. 호텔 주인은 그 돈으로 외상값을 갚는다. 돈은 식료품점, 치킨집, 신발가게, 빵집을 거쳐 다시 호텔로 돌아온다. 손님은 여행 계획이 바뀌었다며 예약을 취소하고 10만 원을 돌려받는다. 외부에서 들어온 돈은 없지만, 마을 안에서 거래가 여러 번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가 살아났다고 말한다.

 

이야기는 간단하고 이해도 쉽다. 그래서 더 그럴듯하게 들린다. “이게 지역화폐 효과다”, “기본소득도 이 원리로 돌아간다는 설명은 경제를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에게 큰 설득력을 준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 더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정말로 그 돈이 마을 경제를 살렸는가?

 

첫째, 이 이야기에는 생산이 빠져 있다. 아무것도 새롭게 만들어진 게 없다. 단지 빚만 돌려막은 셈이다. 돈은 돌았지만, 그 과정에서 재화나 서비스가 새로 창출되지 않았다. 경제 성장은 돈이 돌기만 해서는 이뤄지지 않는다. 생산과 소비가 함께 일어날 때 비로소 총부가 늘어난다. 케인스가 말한 승수 효과도 정부 지출이 고용을 만들고, 그 고용이 다시 소비로 이어지며 새로운 생산이 생기는 과정을 의미한다. 순환은 전제일 뿐, 목적이 아니다.

 

둘째, 받은 돈을 모두 소비하는 일은 현실에서는 드물다. 경제학에는 한계소비성향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람들이 소득 중 얼마를 소비에 쓰는지를 나타낸다. 한국의 경우, 정부가 국민에게 100만 원을 지급하면 평균적으로 20~30만 원만 실제 소비로 이어진다는 연구가 있다. 예시에선 10만 원이 전액 소비되는 것으로 가정되지만, 현실에서는 일부는 저축하거나 빚을 갚고, 일부만 소비된다. 순환은 생각보다 쉽게 멈춘다.

 

셋째, 이 이야기에는 보이지 않는 피해자가 있다. 예약을 취소당한 호텔은 실제 손해를 볼 수 있다. 손님을 받기 위해 방을 치우고, 인력을 배치하고, 자원을 투입했을 수도 있다. 겉보기엔 모두가 이익을 본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누군가의 손해가 바탕이 된 구조다. 노쇼는 현실에서 민폐로 취급되는 행동이지, 경제를 움직이는 미담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인터넷에서 회자된 우화다. 미국의 중앙은행 전직 총재가 유머러스하게 소개한 적도 있고, 유럽에서도 반복적으로 사용된 사례다. 그 목적은 하나다. 일시적인 유동성 공급만으로도 경제가 잠시 활기를 띨 수 있다는 점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자체로는 유익한 설명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우화를 현실의 경제정책으로 곧장 끌어오는 순간 발생한다.

 

경제는 단순한 감탄문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정책은 숫자와 계산으로 설계돼야 한다. 만약 정부가 실제로 지역에 돈을 공급한다면, 그 돈이 어떻게 소비되고, 어떤 소득을 낳고, 어떤 생산을 유도하는지 구체적인 사후 구조가 필요하다. 돈이 돌기만 하면 된다는 접근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우리가 따져야 할 것은 단순히 어떻게 돈이 돌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그 돈이 돌고 나서 무엇이 남았는가이다. 잠깐의 유동성이 끝나면 마을엔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 있다. 새로운 부가가치가 창출되지 않으면, 경제는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순환보다 중요한 건, 지속성과 실질이다.

 

정치는 종종 경제를 쉽게 말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쉬운 설명이 언제나 옳은 설명은 아니다. 쉬운 말은 이해를 돕는 데는 유용하지만, 정책이 되려면 정확하고 실현 가능한 구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호텔경제학은 좋은 비유일 수는 있다. 그러나 정책 설계도의 중심에는 설득이 아닌, 구조와 결과가 있어야 한다. 경제는 말이 아니라, 숫자와 결과로 증명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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