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달력의 역사 그리고 사라진 날들

news1657 2025. 3. 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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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미지 사진 17

 

인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간을 측정해왔다. 밤하늘을 지배하는 달은 주기적으로 차고 기울었고, 대략 한 달이 30일이라는 개념을 형성하게 했다. 계절이 반복됨을 인지하며 12달을 기준으로 한 음력이 등장했다.

 

그러나 모든 문명이 음력에만 의존한 것은 아니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의 범람 주기를 예측하는 것이 생존과 직결되었기에 더욱 정밀한 달력 체계를 모색했다. 음력만으로는 범람 시기를 정확히 맞추기 어려웠고, 태양의 움직임을 기반으로 한 태양력을 발전시켰다. 이 태양력은 1년을 365일로 설정하고, 윤년 개념을 도입해 계절과의 오차를 줄이는 혁신적인 방식이었다.

 

이집트를 정복한 로마는 자신들의 달력보다 이집트 태양력이 더욱 정확하다는 점을 깨닫고 이를 도입했다. 기원전 46,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집트 태양력을 모델로 삼아 율리우스력을 공표했다. 1년을 365.25일로 계산하고, 4년에 한 번 윤년을 두는 방식이었다. 로마 제국이 확장하면서 율리우스력은 서구 세계의 표준 달력이 되었다.

 

그러나 율리우스력에도 결함이 있었다. 실제 1년은 365.2422일로, 0.0078(11)의 오차가 누적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계절과 어긋나게 되었다. 이 문제는 기독교 사회에서 부활절의 날짜를 정하는 데 혼란을 초래했다. 1582,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기존 달력의 오차를 수정한 그레고리력을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한 번에 10일이 삭제되어 1582104일 다음 날이 1015일이 되는 시간 도약이 발생했다.

 

그레고리력은 점차 유럽 각국으로 확산되었지만, 로마 교황청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영국은 한동안 율리우스력을 고집했다. 그러나 대영제국의 확장과 함께 정확한 달력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결국 1752년에 영국도 그레고리력을 채택하게 되었다. 로마 가톨릭과 사이가 좋지 않은 러시아, 세르비아, 에티오피아 등 일부 국가의 정교회는 지금도 성탄절을 1225일이 아닌 1월 초에 기념하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도 흥미롭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은 ‘10월 혁명으로 불리지만, 사실상 11월에 일어난 사건이다. 당시 러시아는 여전히 율리우스력을 사용하고 있었고, 그레고리력과는 13일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1025일에 발생한 ‘10월 혁명은 사실상 117일에 발생한 것이다. 러시아는 혁명 이듬해에야 오늘날의 달력을 받아들였다.

 

우리나라는 1895년 을미개혁을 통해 태양력을 공식적으로 도입했다. 그러나 이 변화는 민중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고종의 아관파천 이후 친일 내각이 무너지자, 개혁을 이끌었던 총리대신 김홍집은 민중들에게 끌려 나와 돌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으로까지 번졌다. 태양력 도입은 단순한 시간 측정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과 개혁이 충돌한 대표적 사례로 남아 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달력은 수천 년에 걸친 인류 문명의 집적된 지혜의 산물이다. 고대 이집트의 농사 예측에서 시작된 태양력은 로마를 거쳐 현대까지 이어져 왔고, 문명 간의 교류와 발전 속에서 지속적으로 정교해졌다. 달력은 단순한 날짜 표시를 넘어, 인류가 쌓아온 과학과 역사, 그리고 문화적 유산을 담고 있는 살아 있는 증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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