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듯 기억하는 사람들, 인간 사회 거울 같은 존재
사람은 누구나 과거를 기억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억은 흐릿하고 조각나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왜곡되거나 잊힌다. 인간의 뇌는 모든 정보를 저장하지 않는다. 생존과 감정에 중요한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기록하고, 나머지는 지워버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이 곧 사실이라고 믿지만, 사실은 기억조차 '해석된 정보'일 뿐이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이 법칙에서 예외다. 그들은 마치 사진을 찍듯이, 과거의 순간을 정밀하게 기억한다. 특정 날짜에 무슨 일이 있었고, 누구와 무슨 말을 나눴으며, 주변에 어떤 냄새가 났는지까지도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다. 과학적으로는 이를 ‘하이퍼타이메시아(hyperthymesia)’라고 부른다. 전체 인구 중 극소수에게만 나타나는 이 능력은, 축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양날의 칼이다.
이런 사람들은 매일 밤 잠들기 전, 하루를 되돌리며 사진 파일처럼 장면을 하나하나 재생한다. 확대도 가능하다. 언제든 특정 장면을 다시 불러올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대화 중 상대가 과거의 일을 다르게 말하거나 왜곡된 이야기를 할 때, 이들은 상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는 아무렇지 않게 기억을 덧칠하지만, 이들은 점점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인간 사회는 혼자 살아갈 수 없기에, 이들도 결국 타협하며 타인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보통 사람들은 팩트 70%에 상상력 30%쯤 섞어 이야기하면 ‘진실하다’고 받아들인다. 허풍과 과장은 인간관계의 윤활유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하로 떨어지면 신뢰는 흔들리지만, 일정 선까지는 묵인된다. 그러나 허풍 30%도 ‘거짓’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겐 이 타협이 쉽지 않다. “사실이 80%쯤 맞고, 20%쯤은 허풍이면 그나마 진실하다고 봐야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아가지만, 인간관계에 대한 확신은 끝내 갖기 어렵다.
이들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도 있다. 드라마 언포게터블(Unforgettable), 영화 레인 맨(Rain Man)은 대표적이다. 레인 맨의 주인공 레이먼드는 수학적 계산과 기억력에 천재적인 능력을 보이며, 블랙잭 게임에서 떨어진 카드를 모두 외워 승리하는 장면은 유명하다. 한국 영화 ‘감시자’에서도 CCTV 화면을 장면 단위로 기억해 사건을 추적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처럼 특별한 기억력을 지닌 사람들은, 그 능력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활용할 경우 사회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장점을 발휘할 수 있다. 만약 이들이 어릴 때부터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적절한 훈련과 진로 지도를 통해 재능을 펼칠 기회를 가졌다면, 삶은 훨씬 더 안정적이고 주체적이었을 것이다. 사회가 그들을 ‘다르다’고 경계하기보다는 ‘귀하다’고 존중해주는 구조였다면 말이다.
우리는 종종 거짓말을 통해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거짓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숨겼다고 믿는 것들이 결코 숨겨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조물주는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세상에 심어두었다. 그들은 진실을 외면하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다. 벌거벗은 채 거짓을 말하는 우리에게, 정직하지 못한 기억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