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파키스탄 분쟁, 영국이 만든 또다른 비극
4월 22일, 인도령 카슈미르의 파할감(Pahalgam)에서 힌두교 순례객 26명이 무장세력의 공격으로 숨졌다. 인도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파키스탄과 그 실효지배 지역 내 9개 지역에 공습을 감행했다. 파키스탄도 맞보복에 나서면서 카슈미르 지역은 또 다시 유혈사태를 맞았다.
이번 사태는 테러 대응을 둘러싼 충돌이지만, 뿌리는 7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7년, 영국은 인도를 떠나며 힌두교 중심의 인도와 이슬람 중심의 파키스탄을 분리 독립시켰다. 그러나 카슈미르 문제는 미해결 상태로 남겼다. 이슬람 인구가 다수였던 카슈미르는 당시 힌두교도였던 군주 하리 싱의 결정에 따라 인도에 병합되었다. 주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했다.
파키스탄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듬해 전면전이 벌어졌다. 유엔이 개입해 휴전을 중재했고, 현재까지 인도는 동부, 파키스탄은 서부를 각각 실효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양국 모두 카슈미르 전역의 영유권을 주장한다. 그 사이 1965년과 1999년에도 전면전이 일어났고, 수차례 국지전과 테러가 되풀이됐다.
2019년, 인도 모디 정부는 카슈미르 자치권을 보장하던 헌법 370조를 폐지했다. 자치지위는 사라졌고, 중앙정부 직할 통치가 시작됐다. 인터넷과 언론은 차단됐고, 무슬림 주민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인도 정부는 테러 예방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현지 주민들은 차별과 억압으로 느끼고 있다.
반면 파키스탄은 인도의 조치를 ‘국제법 위반’이라 비판하며 카슈미르의 자결권을 주장한다. 그러나 파키스탄 내에서도 무장세력과의 연결 의혹은 사라지지 않는다. 과거에는 정보기관이 무장조직을 비호했다는 국제사회의 지적도 있었다.
카슈미르는 종교, 민족, 영토가 얽힌 세계 최악의 분쟁지 중 하나다. 더 심각한 건, 인도와 파키스탄 모두 핵보유국이라는 사실이다. 단순한 국경충돌이 곧 전면전과 핵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는 늘 긴장한다.
이번 유혈사태 역시 테러-보복-반격의 고리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진짜 원인은 따로 있다. 무책임하게 떠난 식민지 종주국 영국이 남긴 미완의 분할, 주민의 뜻보다 지배자의 결정을 앞세운 병합이 오늘의 비극을 만들었다.
식민 유산이 남긴 상처는 단지 과거의 비극에 머물지 않는다. 경계선 하나로 갈라진 민족과 종교는 수십 년이 지나도록 치유되지 못한 갈등을 낳고 있다. '무력에 의한 평화'는 단기적 통제일 뿐이며, 억눌린 공동체는 언젠가 폭발할 수밖에 없다.
우리도 분단의 역사를 안고 살아가는 나라다. 식민지 지배, 강제 분단, 그리고 그로 인한 이념 대립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외부의 힘에 의해 결정된 국경선이 공동체의 삶과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카슈미르의 반복되는 유혈 사태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