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국민음료 된 박카스…한국보다 더 마신다
인구 1,400만 명의 캄보디아에서 한 해 동안 팔리는 박카스는 약 1억 캔. 단순 계산만 해도 국민 1인당 8캔을 소비하는 셈이다. 한국보다도 더 많이 마시는 나라, 바로 캄보디아다. 이 낯익은 한국산 피로회복제가 동남아 시장에서 국민음료로 자리 잡은 데는 단단한 전략과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박카스는 한때 국내 에너지음료 시장의 절대강자였다. 1963년 드링크 형태로 출시된 이후 ‘야근의 동반자’, ‘수험생의 친구’로 불리며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상황은 달라졌다. 비타500이 젊은 층을 겨냥한 톱스타 마케팅과 ‘카페인 무첨가’를 내세우며 맹렬히 추격했고, 시장 경쟁이 심화되었다. ‘올드하다’는 이미지가 붙었고, 약국에서나 찾는 제품이라는 인식도 강했다.
절치부심한 동아제약은 변화를 택했다. 타우린 함량을 높인 ‘박카스D’, 카페인을 뺀 ‘디카페’ 제품을 내놓고, 이후 젤리·아이스크림 형태의 변형 제품도 출시하며 젊은 층과의 소통을 시도했다. 카카오프렌즈·배스킨라빈스와의 협업 등 브랜드 리뉴얼 노력은 단지 국내 시장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러한 노하우와 함께 해외 시장 진출의 필요성을 깨달으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2009년, 박카스는 캄보디아 시장에 첫발을 들였다. 첫해 판매량은 26만 캔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후 빠른 속도로 판매량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2010년대 중반 이후 연간 1억 캔을 돌파하며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단순히 제품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이름부터 바꿨다. 발음이 어려운 ‘박카스’ 대신 현지인들이 쉽게 부를 수 있는 ‘바까(BaKa)’로 재탄생시켰다. 캄보디아 소비자 중 일부는 ‘바까’가 한국어로 ‘힘’을 뜻하는 말인 줄 안다고 할 정도다. 이름이 짧고 강한 어감을 주면서도 ‘한국산’이라는 이미지와 잘 연결되었다.
용기도 병에서 캔으로 바꿨다. 250ml 대용량 캔은 더운 날씨에 잘 어울렸고, 거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휴대하기도 편했다. 병 제품 위주로 판매하던 경쟁사 레드불에 비해 가격도 저렴했다. 유통망도 달랐다. 마트나 편의점 대신 노점상과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공급했다. 동아제약은 건설 현장, 오토바이 기사, 농장 일꾼 등을 주요 타깃으로 삼았다. 결정적인 순간은 샘플링 캠페인이었다. 피로한 노동자들에게 무료로 한 캔씩 제공했고, “기운이 난다”는 경험은 입소문으로 번졌다. 사람들은 다음 날 또다시 그 음료를 찾기 시작했다. ‘피로엔 바까’라는 공식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명절 시즌을 겨냥한 마케팅도 효과적이었다. 현지 설날과 추수감사절에는 대형 선물세트를 내놓았고, 이 음료는 가족 건강을 위한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거리의 배너와 TV 광고는 “한국에서 온 건강 음료”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이렇게 ‘박카스’는 캄보디아에서 국민음료로 등극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캄보디아는 한국보다 먼저 박카스를 ‘일상 음료’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2011년까지 박카스가 약국 전용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돼 유통이 제한적이었지만, 캄보디아에서는 처음부터 거리 노점과 소매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료였다. 한국보다 먼저 약국의 경계를 허문 나라가 캄보디아였던 셈이다.
박카스에 대한 오해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이 제품이 일본 오츠카제약의 제품이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실제로 동아제약이 오츠카와 함께 ‘동아오츠카’라는 합작 음료 회사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카스는 동아제약이 1961년 개발한 순수 국산 제품이며, 일본에는 동아제약이 직접 수출해 유통하고 있다. 위탁 생산이나 판매는 아니다.
박카스 사례는 한국 기업들이 배워야 할 진짜 로컬라이징의 전형이다. 동일한 제품이라도 시장마다 포장, 이름, 유통 방식이 달라야 한다는 사실은 수치로 증명된다. 연간 1억 캔, 인구 1인당 8캔 소비라는 결과는 철저한 데이터 기반의 전략과 실행이 이뤄졌을 때 가능한 수치다. 제품의 본질은 유지하되, 전달 방식은 소비자의 언어로 맞춰야 한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