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정책은 결국,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다.

news1657 2025. 3. 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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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미지 사진 11

 

육아휴직은 더 이상 낯선 제도가 아니다. 지난해 육아휴직자의 남성 비율이 30%를 넘어섰다는 점은 우리 사회가 일과 가정의 균형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정책 시행 역사를 따져보면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 조선 세종 시대에도 현대 육아휴직의 원형이라 할 만한 제도가 있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은 여성 노비에게 출산 전후 100일간의 휴가를 보장했을 뿐만 아니라, 남편 노비에게도 30일간의 출산휴가를 허용했다. 이는 단순한 시혜적 조치가 아니라, 육아가 여성만의 몫이 아니라는 시대를 앞선 인식에서 비롯된 정책이었다.

 

세종 12(1430) 1019, 세종은 기존의 관노비 출산휴가를 대폭 늘리면서 "출산일에 임박할 때까지 노동을 하면 몸이 지쳐 산기를 맞이하기도 전에 아이를 낳는 경우가 많다"며 산전휴가 1개월을 추가로 보장할 것을 명령했다. 이어 세종 16(1434) 426일에는 남편 노비에게도 30일간의 출산휴가를 주도록 했다. 그는 "산모를 돌볼 사람이 없으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강조하며, 부부가 함께 출산과 육아를 책임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오늘날에도 남성 육아휴직이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세종의 정책은 시대를 앞선 복지제도였다. 그러나 이 제도는 세조 때 폐지됐다. 세조는 전제왕권 강화를 위해 세종이 시행했던 여러 인본주의적 정책을 축소하거나 없앴고, 노비의 육아휴직 제도도 이 과정에서 사라졌다. 이후 수백 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남성의 육아 참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육아휴직 제도가 다시 도입된 것은 산업화 이후 맞벌이 가정이 증가하면서부터다. 1995년 육아휴직법이 처음 시행됐고, 2001년에는 남성도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다. 이후 꾸준한 제도 개선을 거쳐 이제는 남성 육아휴직 비율이 30%를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렀다.

 

국가 정책은 시대적 변화에 따라 발전하지만, 정책의 근본적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관점의 문제다. 세종은 노비를 단순한 노동력이 아니라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는 인간으로 대우했다. 또한 출산과 육아를 가정 내 특정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고, 공동의 책임으로 인식했다. 시대를 뛰어넘는 이러한 사고방식이 있었기에 조선 초기에나마 현대적 육아휴직의 원형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세종의 애민정책은 일시적 개혁으로 끝났지만, 오늘날에도 되새기고 배워야 할 점이 많다. 국가 정책은 겉으로는 법과 규정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인간 존중의 철학 위에 놓일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사회적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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