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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5

왜 순금은 100%가 아니라 24K로 부를까?

우리가 순금을 얘기할 때 흔히 ‘24K’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순금이면 100%라는 말을 쓰는 게 더 직관적이지 않을까. 왜 하필 24K일까? 그렇다면 18K, 14K는 금이 얼마나 들어 있는 걸까. 이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금의 순도를 나타내는 단위인 캐럿(karat)은 지중해 연안에 자라는 캐럽(carob) 나무의 씨앗에서 유래했다. 이 씨앗은 무게가 거의 일정해, 고대 상인들은 금이나 보석의 무게를 잴 때 기준으로 사용했다. 캐럽 씨앗 한 알을 1캐럿으로 보고, 24개를 기준 단위로 삼았는데, 이것이 순금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즉, 캐럽 열매 24개 무게만큼의 금이 들어 있으면 100% 순금이라는 뜻이 되었다. 18K는 캐럽 씨앗 18개 무게만큼의 금이 포함됐다는 의..

역사 2025.04.16

'닭둘기' 논란에 숨겨진 웃픈 해프닝

서울시가 오는 7월부터 광화문광장과 서울숲, 한강공원 등 38곳을 유해야생동물 먹이주기 금지구역으로 지정하고, 이곳에서 비둘기나 까치에게 먹이를 주다 적발되면 최대 1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1차 적발 시 20만 원, 2차 50만 원, 3차는 100만 원이다. 6월 말까지는 계도기간이며, 본격적인 단속은 7월 1일부터 시작된다. 한때 평화의 상징으로 불리던 비둘기는 이제 도시의 불청객, 혐오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 사람 손에 자란 닭처럼 뚱뚱하고, 날아오르지도 못한다고 해서 ‘닭둘기’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이제는 새라기보다 닭에 가깝고, 심지어 쥐처럼 더럽다는 뜻을 담은 ‘쥐둘기’라는 말까지 나왔다. 사람의 먹이에 길들여져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난 비둘기들은 이미 도시 미관과 위생에 위..

역사 2025.04.10

조선의 무, 일본 소바 문화를 바꾸다

여름이면 한국과 일본에서 메밀국수가 인기를 끈다. 특히 메밀국수를 시원한 무즙과 함께 먹는 방식은 더위를 식히고 입맛을 돋우는 데 효과적이다. 그런데 메밀과 무즙의 조합이 단순한 기호를 넘어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식문화라는 점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메밀은 전 세계적으로 재배되는 곡물이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유독 중요한 음식문화로 자리 잡았다. 조선 시대에도 메밀은 중요한 구황작물로 활용되었으며, 국수 형태로 가공해 먹는 문화가 확립되었다. 『산림경제』(1715년)와 『임원경제지』(19세기) 등에 메밀을 활용한 국수 요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메밀국수가 조선 후기부터 대중적인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조선에서 대량의 쌀을 반출했다. 이에 따라 조선 내에서는 수수,..

역사 2025.03.20

경북 봉화에 베트남 왕족 집성촌이 있다

베트남 리 왕조의 마지막 왕자 이용상(李龍祥)은 13세기 초 왕조 교체의 혼란 속에서 고려로 망명했다. 당시 베트남에서는 리 왕조 후손들에 대한 숙청이 벌어지고 있었고, 이용상 일행은 이를 피해 동아시아 바다를 떠돌다 풍랑에 휩쓸려 고려 황해도 해주 화산 지역에 표류했다. 처음 고려 주민들은 이들을 왜구로 오인했다. 당시 해안 지역은 왜구 출몰이 잦았고, 낯선 외국인은 경계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용상과 그의 무사들이 해적을 격퇴하며 상황은 반전됐다. 이들의 뛰어난 무예와 전략이 주목받자 고려 조정에 보고되었고, 고종은 이용상에게 화산군(花山君)의 작위를 내리고 정착을 지원했다. 이후 그의 후손들은 고려 조정에서 '화산 이씨' 성을 하사받고, 일부는 안동부사 작위를 받아 안동 지역으로 내려갔다. 이후 경북..

역사 2025.03.16

중국 3대 기행문, 그중 하나는 조선인이 썼다

중국인들이 선정한 3대 기행문이 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조선의 최부가 남긴 『표해록』, 일본 승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다. 『동방견문록』은 유럽에 중국을 알린 대표적인 기행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두 번째로 꼽히는 기행문이 조선인이 남긴 기록이라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최부(崔溥, 1454~1504)는 조선의 학자이자 관료로, 1488년 부친상을 당하고 제주에서 전라도로 돌아가던 중 풍랑을 만나 표류했다. 그는 중국 절강성(현 항저우 부근)에 도착했으나, 처음에는 왜구로 오인되어 감옥에 갇혔다. 이후 조선의 관료임이 밝혀져 명나라 조정에 보고된 후 북경으로 압송되었으며, 황제를 알현하는 기회를 얻었다. 당시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최부 일행은 운하를..

역사 2025.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