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중국 3대 기행문, 그중 하나는 조선인이 썼다

news1657 2025. 3. 16. 08:46
728x90
반응형

칼럼 이미지 사진 35

 

중국인들이 선정한 3대 기행문이 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조선의 최부가 남긴 표해록, 일본 승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 동방견문록은 유럽에 중국을 알린 대표적인 기행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두 번째로 꼽히는 기행문이 조선인이 남긴 기록이라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최부(崔溥, 1454~1504)는 조선의 학자이자 관료로, 1488년 부친상을 당하고 제주에서 전라도로 돌아가던 중 풍랑을 만나 표류했다. 그는 중국 절강성(현 항저우 부근)에 도착했으나, 처음에는 왜구로 오인되어 감옥에 갇혔다. 이후 조선의 관료임이 밝혀져 명나라 조정에 보고된 후 북경으로 압송되었으며, 황제를 알현하는 기회를 얻었다.

 

당시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최부 일행은 운하를 이용해 북경까지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각 지역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를 꼼꼼히 기록으로 남겼고, 이것이 바로 총 6권으로 구성된 표해록이다.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중국 운하 주변 도시들의 정치와 문화, 사회 구조를 담고 있어, 중국 운하 연구에서 필수적인 자료로 평가받는다.

 

표해록에는 중국의 행정 체계, 시장 경제, 기후 변화, 도로 사정, 백성들의 생활상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당시 조선 조정에서는 중국에 대한 기록이 부족했기에, 최부의 기록은 외교 관계를 위한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었다. 그의 세밀한 기록 덕분에 조선은 중국의 사회와 경제 구조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훗날 조선 왕이 이를 중국 황제에게 바쳤다는 점도 그 가치를 증명한다.

 

특히 최부가 기록한 중국 남부와 북부의 차이는 조선 학자들에게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되었다. 그는 남부 지역이 온난한 기후 덕분에 농업이 발달한 반면, 북부에서는 중앙집권적 통치 방식이 강하게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또한, 중국의 문물과 제도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생활 방식과 민속 문화까지 세밀하게 기록했다.

 

최부는 중국의 도시 구조에도 주목해 각 지역의 건축 양식과 도로망, 시장의 형태 등을 자세히 기록했다. 또한 명나라의 관료들이 활용하는 세금 징수 방식과 운하를 통한 물류 흐름을 분석하며, 중국 경제의 특징을 파악하려 노력했다. 이는 후대에 조선이 중국의 경제 체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었다.

 

표해록은 그 중요성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널리 읽히지 못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 사이에서는 주목받았으나, 일반 대중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반면 중국에서는 학술적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고, 일본에서도 연구가 이루어졌다. 중국과 일본에서 주목받은 조선인의 기록이 정작 한국에서는 잊힌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표해록은 단순한 역사 기록이 아니라, 과거 동아시아의 정치·경제·사회 구조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기록한 당시 중국의 행정 체계나 경제 운영 방식을 오늘날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표해록에는 조선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과거 중국의 모습이 담겨 있다. 조선이 명나라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가교 역할을 했던 표해록은 동아시아의 정치·사회적 흐름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