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QR코드와 샤인머스캣의 얄궂은 운명

news1657 2025. 3. 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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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미지 사진 14

 

QR코드와 샤인머스캣이 일본에서 개발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QR코드는 1994년 일본 덴소 웨이브의 하라 마사히로가 개발했고, 샤인머스캣은 1988년 일본에서 아키즈21하쿠난 교배로 만들어졌다. 이후 2006년 품종 등록이 완료됐다. 하지만 이 두 가지 혁신적인 제품은 일본을 벗어나 각기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 QR코드는 중국에서, 샤인머스캣은 한국에서 폭발적으로 확산됐다. 일본인들이 보기엔 얄밉고 아쉬운 상황이다.

 

QR코드는 중국에서 전자결제와 온라인-오프라인(O2O) 연결을 위한 필수 기술로 자리 잡았다. 알리페이와 위챗페이 등 모바일 결제 시장은 QR코드 없이는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샤인머스캣도 종자 특허 보호가 종료된 2014년 이후 한국에서 급속히 확산됐다. 지금은 한국이 샤인머스캣 수출 1위 국가다. 한국산 샤인머스캣은 중국, 베트남, 미국 등 20여 개국으로 수출되며, 2024년 포도 수출액 중 90% 이상을 차지했다. 일본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과 품종이 다른 나라에서 더 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국제 경쟁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일본은 QR코드와 샤인머스캣에 대한 국제특허를 출원하지 않았다. 특히, QR코드를 개발한 하라 마사히로는 "QR코드는 인류에게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기에 무료로 개방했다"고 밝힌 바 있다. 샤인머스캣 역시 해외 품종 등록을 하지 않은 일본의 선택이 있었다.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기술과 품종을 공유하고 보편화하려는 시민의식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일본이 국제특허를 신청하지 않은 이유를 단순한 실수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하라 마사히로가 QR코드를 무료로 공개한 배경에는 누구나 빠르고 쉽게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철학이 있었다. 이는 기업의 이윤보다는 사회적 가치를 우선한 선택이었다. 샤인머스캣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는 엄격한 품종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종자 보호기간(10)이 끝나자마자 무분별한 재배가 이루어졌다. 품질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당도가 낮아지고, 브랜드 가치도 하락했다. 이제는 거봉보다도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프리미엄 과일이라는 이미지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QR코드와 샤인머스캣이 각국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해서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만을 낳은 것은 아니다. QR코드는 중국에서 빠르게 확산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 문제도 발생했다. 중국 정부는 QR코드를 활용한 감시 시스템을 구축했고, 빅데이터를 이용한 국민 통제에 활용하고 있다. 한국 역시 샤인머스캣을 빠르게 받아들였지만, 품질 관리에는 실패했다. 당도가 떨어지고, 브랜드 가치도 예전 같지 않다. 무분별한 재배와 관리 부족으로 인해 샤인머스캣은 거봉보다 싼 과일로 전락했다. ‘빨리빨리문화가 경제 성장에는 기여했지만,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과속은 결국 성숙한 사회로 나가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일본이 보여준 기술 개방의 철학을 다시금 돌아보자. 우리도 이제는 단순히 얻어 쓰는방식이 아니라, ‘새롭게 창출하는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기술을 가져오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를 어떻게 발전시키고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 QR코드는 중국에서, 샤인머스캣은 한국에서 꽃을 피웠지만, 그 과정이 모두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이 보여준 개방과 공유의 철학지속적인 관리와 혁신이 동반되지 않으면 결국 그 가치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단순한 빨리빨리를 넘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술과 자원을 바라보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QR코드와 샤인머스캣의 엇갈린 운명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기술과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고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일본은 공유의 가치를 실천했지만, 관리의 중요성 또한 간과하지 않았다. 이제는 한국도 그 정신을 되살려 지속 가능한 혁신을 만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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