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새 인공지능(AI) 모델 ‘제미나이 2.5 플래시(Gemini 2.5 Flash)’를 발표했다. 발표 시점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구글 클라우드 넥스트 2025' 행사였다. 이번 모델은 구글이 제시한 '경량형 AI' 전략의 대표 사례로, 기존 AI와는 결이 다른 방향성을 보여준다. 핵심은 ‘빠름’과 ‘가벼움’이다. 단순히 잘 아는 AI가 아니라,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 잘하는 AI를 지향한다.
지금까지 AI는 주로 얼마나 복잡한 사고를 할 수 있는지, 어떤 정밀한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챗GPT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제미나이 2.5 플래시는 실시간 요약, 간단한 질의응답, 일정 정리처럼 실용적인 작업을 빠르게 해내는 데 방점을 찍는다. 이는 전문가용 슈퍼 AI가 아닌, 일상 속 ‘디지털 비서’를 지향하는 접근이다.
이 모델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한 기술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AI에 대한 철학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구글은 복잡한 연산보다 ‘적시에 필요한 만큼’만 똑똑한 AI를 원한다. 이점에서 플래시는 지금까지의 AI와 다른, 실용성과 비용 효율에 집중한 모델이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기존의 AI가 코스 요리를 제공하는 고급 레스토랑이라면, 제미나이 2.5 플래시는 빠르고 저렴한 메뉴를 제공하는 셀프식당에 가깝다. 필요한 것을 빠르게, 과하지 않게 제공한다. 고객 응대, 간단한 문서 작업, 내부 업무 자동화처럼 반복적이지만 대기 시간이 민감한 업무 환경에서 그 효율성이 발휘된다.
이러한 전략은 기업 현장에서 특히 유용하다. 수백 명의 직원이 동시에 AI를 사용하는 환경에서는 처리 속도와 비용이 결정적인 요소다. 제미나이 2.5 플래시는 이런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한 해법으로 설계됐다. 프롬프트의 복잡성에 따라 AI가 추론 수준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기능도 담았다. 단순한 요청에는 빠르게, 복잡한 요청에는 집중해서 반응하는 구조다. 마치 자동차의 자동 변속기처럼, 상황에 맞게 스스로 ‘기어’를 바꾸는 셈이다.
챗GPT와의 차별점도 명확하다. 챗GPT가 ‘지식 백과사전’이라면, 플래시는 ‘일 잘하는 사무보조’다. 챗GPT는 긴 문장을 이해하고, 창의적인 글을 써내며, 고도의 언어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비용과 시간이 든다. 반면 플래시는 그런 복잡한 작업보다, 핵심 정보를 빠르게 뽑아주는 데 집중한다. 이메일 정리, 문서 요약, 데이터 훑기처럼 실시간성과 반복성이 중요한 업무에 적합하다.
무엇보다 이번 발표가 의미 있는 이유는 구글의 기업 정체성이 달라졌다는 점에 있다. 구글은 오랫동안 ‘검색’ 기업으로 알려졌다. 사용자가 질문을 던지면, 그에 맞는 답을 보여주는 구조였다. 하지만 제미나이 2.5 플래시는 상황을 먼저 파악하고, 사용자가 묻기 전에 답을 제시한다. ‘검색’이 아니라 ‘제안’을 중심으로 한 구조다. 이는 구글이 ‘에이전트 중심 기업’으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삼성전자의 AI 로봇 ‘볼리(Balli)’에 제미나이 모델이 탑재된다는 점도 흥미롭다. 볼리는 사용자의 얼굴 표정, 음성, 주변 상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반응하는 반려 로봇이다. 이런 멀티모달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경량형이면서도 빠른 AI가 필요하다. 제미나이 2.5 플래시는 그 조건을 충족시킨다.
이번 협업은 소프트웨어(구글)와 하드웨어(삼성)가 만나 AI가 ‘기기 내장형’으로 확장되는 흐름을 보여준다. 스마트폰이나 스피커에 음성 비서가 탑재된 수준을 넘어, 앞으로는 로봇, 가전제품, 웨어러블 기기 등으로 영역이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AI가 더는 화면 속에 머물지 않고, 현실 공간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