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닭둘기' 논란에 숨겨진 웃픈 해프닝

news1657 2025. 4. 10. 08:00
728x90
반응형

칼럼 이미지 사진 65

 

서울시가 오는 7월부터 광화문광장과 서울숲, 한강공원 등 38곳을 유해야생동물 먹이주기 금지구역으로 지정하고, 이곳에서 비둘기나 까치에게 먹이를 주다 적발되면 최대 1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1차 적발 시 20만 원, 250만 원, 3차는 100만 원이다. 6월 말까지는 계도기간이며, 본격적인 단속은 71일부터 시작된다.

 

한때 평화의 상징으로 불리던 비둘기는 이제 도시의 불청객, 혐오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 사람 손에 자란 닭처럼 뚱뚱하고, 날아오르지도 못한다고 해서 닭둘기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이제는 새라기보다 닭에 가깝고, 심지어 쥐처럼 더럽다는 뜻을 담은 쥐둘기라는 말까지 나왔다.

 

사람의 먹이에 길들여져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난 비둘기들은 이미 도시 미관과 위생에 위협이 되고 있다. 건물 외벽의 배설물은 보기 흉할 뿐 아니라 부식까지 유발하고, 공원이나 광장에서 갑작스럽게 날아드는 비둘기 떼는 시민들의 불쾌감을 넘어 안전까지 위협한다. 실제로 비둘기 배설물에 부식된 외장재가 떨어지는 사고도 발생한 바 있다.

 

한국 사회에서 '닭둘기' 논란은 2008년 전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부터 도시 곳곳에서 비둘기 개체 수가 급증하고, 이로 인한 시민 민원이 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는 비둘기보다 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비둘기를 누가 관리할 것인가를 두고 중앙부처 간 책임 떠넘기기가 본격화된 것이다.

 

환경부는 “비둘기는 사람이 먹이를 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반(半)가축”이라며 농림축산식품부가 관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농림축산식품부는 “비둘기는 야생에서 살아가는 동물”이라며 환경부 소관이라고 맞섰다. 양측 모두 ‘폼 안 나고 귀찮은 일’이라 여겨 책임지길 꺼렸고, 오랜 기간 실랑이만 벌였다.

 

결국 공은 지자체로 넘어갔다. '현장 문제는 현장에서 알아서 하라'는 논리였다. 명확한 기준이나 예산 지원 없이 각 지방자치단체는 비둘기 문제를 조례로 자체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지자체 역시 마찬가지였다. 민원이 접수되면 퇴치업체를 부르거나 기피제를 뿌리고, 방조망을 설치하는 식의 단편적 대응에 그쳤다.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최근에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는 현수막을 간간이 볼 수 있는 정도다.

 

논란이 제기된 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서야 서울시가 처음으로 먹이주기 행위 자체를 규제하고,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실질적 조치에 나섰다. 다소 강한 규제로 보일 수도 있지만, 늦었더라도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닭둘기논란 속에는 시민들의 불편을 책임 있게 다루지 못한 공직사회의 경직성이 숨어 있다. 작은 문제를 방치하고, 책임만 회피하다 결국 문제를 키우는 이런 관행은 반복돼서는 안 된다. 정책이 제때 작동하지 않았던 이 사례는, 행정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고 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