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년 1월 1일을 새해 첫날로 맞이한다. 하지만 그 날이 과연 새로운 시작에 적절한 시점인지 돌아보면 의문이 든다. 해가 가장 짧고 밤이 긴 한겨울에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 인간의 생체리듬과 자연의 순환에 부합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천 년 전 인류는 본래 3월이 한 해의 시작이었다. 이는 농경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겨울이 지나고 날이 따뜻해지며 농사가 시작되는 계절, 군대가 이동하기 좋은 시기가 곧 한 해의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10개월 동안 활발하게 활동한 후, 해가 가장 짧은 12월이 되면 동면에 가까운 휴식기에 들어갔다. 그리고 3월이 오면서 다시금 새로운 한 해를 준비했다. 오늘날의 12월을 의미하는 'December'가 본래 '열 번째 달'이라는 뜻이었고, 10월을 뜻하는 'October' 역시 '여덟 번째 달'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는 점만 봐도, 과거 한 해의 시작이 3월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질서는 기원전 153년, 로마 공화정에서 집정관 대관식을 3월에서 1월로 변경하면서 깨졌다. 당시 로마는 히스파니아(현 스페인 지역)에서의 군사 작전이 중요한 문제였고, 이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집정관의 임기를 앞당길 필요가 있었다. 이후 모든 집정관들은 1월에 취임했다. 이 변화는 결국 1월을 새해의 첫날로 삼는 율리우스력의 기초가 되었고, 이후 그레고리력으로 이어지면서 현대까지 이어졌다. 즉, 오늘날 우리가 새해를 1월에 맞이하는 것은 자연의 순리가 아니라, 정치적 결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1895년 을미개혁 이전까지는 음력을 기준으로 구정을 새해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3월은 아니더라도 음력 설날이 보통 2월에 위치해, 인간의 생체리듬과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농사를 준비하면서 새해를 맞이했고,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분위기 자체가 3월과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을미개혁 이후 서구식 태양력이 도입되면서 우리도 1월 1일을 기준으로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세계적으로도 3월을 새해로 맞이하던 문화가 곳곳에 존재했다는 것이다.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노루즈(Nowruz)’라는 전통 명절이 춘분(3월 20일~21일)에 열렸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인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봄에 새해를 맞이하는 전통이 남아 있다. 이러한 문화적 유산은 인간이 자연의 순환과 리듬을 고려해 시간을 설정했던 흔적이다.
우리는 지난 2천 년간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1월의 차가운 날씨 속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반대로, 해가 길어지고 꽃이 피어나는 3월이 되면 우리도 모르게 마음이 설레고,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이는 우리가 본능적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익숙한 것에 순응하는 것이 삶의 일부이지만, 때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과연 자연스러운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2천 년 전 사람들은 3월을 한 해의 시작으로 여겼다. 어쩌면 우리가 느끼는 1월의 무거움과 3월의 설렘은 그들이 남긴 흔적일지도 모른다. 이제 3월을 맞이하며, 인류의 오래된 본능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와 격려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