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사회는 마치 거대한 동굴 속에 갇힌 듯하다. 사회 곳곳에서 이념과 진영 논리에 따른 갈등이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다. 시민들은 각자 자신이 믿는 정보와 해석에만 몰입한 채, 다른 시선은 틀렸다고 단정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진실을 보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이러한 현상은 고대 철학자 플라톤이 2천 년 전 ‘동굴의 비유’를 통해 경고했던 모습과 닮아 있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 제7권에서 인간의 인식이 얼마나 제한적일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그는 인간을 동굴 속에 사슬로 묶여 벽만 바라보는 죄수에 비유했다. 이들은 바깥에서 비추는 불빛에 의해 비친 그림자만을 현실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실재하는 대상은 그 그림자를 만든 진짜 사물들임에도, 죄수는 그림자를 전부라고 착각한다. 만약 누군가가 용기를 내어 동굴 밖으로 나가 진정한 현실을 목격한 뒤 돌아와 그 사실을 말한다면,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비웃고 미친 사람이라 여길 것이다. 플라톤은 인간이 익숙한 믿음에 사로잡히면 진실을 기피하게 된다고 보았다.
오늘날 대한민국도 이 ‘동굴의 비유’가 재현되는 듯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사람들은 뉴스, 유튜브, SNS 알고리즘이 걸러낸 정보만을 접하며, 그 안에서만 현실을 구성한다. 자신이 속한 진영이 제시하는 해석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반대편의 주장이나 팩트체크는 애초에 받아들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한쪽을 맹신하고 다른 쪽을 악마화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진실 여부와는 무관하게, 누가 말했는지만으로 판단이 갈린다.
문제는 이 같은 흐름이 사회 전체의 대화 가능성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의 충돌 속에서 최선의 해답을 찾아가는 체제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대화와 토론이 실종되고, 정서적 혐오와 배제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의 토론은커녕, 그들을 ‘배신자’나 ‘변절자’로 몰아붙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결과적으로 공론장이 협소해지고, 사회적 합의 형성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플라톤은 단순한 감각적 경험만으로는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성과 철학적 사유, 비판적 사고야말로 진정한 앎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이 과연 실재인지, 누군가에 의해 가공되고 연출된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묻고 의심해야 한다. 편향된 정보에만 노출된 상태에서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태도는 결국 사회적 파편화를 가속시킨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영의 동굴’에서 벗어나려는 의식적 노력이다. 내가 보고 있는 정보는 실제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만든 그림자인가.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 언론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비판 없이 수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불편한 정보나 상반된 주장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자기 질문 없이 우리는 영원히 동굴 속 그림자에 갇혀 살아가게 된다.
플라톤이 남긴 동굴의 비유는 지금 이 시대에 다시 읽혀야 할 메시지다. 이제는 동굴 밖으로 나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