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환자 곁을 지키는 로봇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자동차 회사가 병원 안으로 들어간다는 말이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 선택은 단순한 기술 실험을 넘어선 전략적 행보다.
최근 한림대학교의료원과 현대차·기아는 ‘로봇 친화 병원’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병원 환경에 특화된 배송 로봇, 출입 인증 시스템, 물류 관제 솔루션 등을 공동 개발하고 이를 실제 현장에서 실증하겠다는 계획이다. 실증 1호 대상은 한림대학교성심병원이다.
병원은 무작위로 사람이 오가는 고밀도 복합 공간이다. 휠체어, 이동 침대, 의료진, 환자, 보호자 등 다양한 주체가 복잡한 동선 위에 동시에 존재한다. 이러한 공간에서 로봇이 원활히 작동하려면 자율주행, 정밀 센서, 장애물 회피 같은 고도의 기술이 필수다. 여기에 감염 예방, 의료정보 보호, 약물 분류 같은 병원 특유의 조건까지 고려해야 한다. 단순히 로봇을 갖다 놓는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다.
현대차가 이런 고난도의 공간에 도전장을 낸 이유는 무엇일까. 핵심은 '모빌리티'의 확장에 있다. 현대차는 더 이상 자동차 제조사로만 머물지 않는다. 스스로를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이라 정의한다. 전통적인 교통수단을 넘어, 사람과 서비스를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연결할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병원은 의미 있는 실험장이 된다. 고령화가 가속되며 의료기관과 요양시설은 반복 업무와 인력 부족에 직면해 있다. 이를 해결할 유력한 수단이 바로 서비스 로봇이다. 실제로 한림대의료원은 현재 국내 최대 규모인 77대의 로봇을 병원 현장에 배치해 의약품 운반, 병동 간 물품 이동, 안내 업무 등에 활용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 시장을 로봇 사업의 테스트베드이자 유망 시장으로 보고 있다. 병원은 기술 검증과 동시에 수요 기반이 분명한 분야다. 특히 현대차는 이미 오피스 환경을 중심으로 ‘로봇 친화 빌딩’ 사업을 진행해 왔다. 팩토리얼 성수 등 민간 공간에서 실내 배송, 무인 택배, 전기차 충전 로봇 등을 운영하며 기술력을 축적해왔다. 병원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지만, 그만큼 기술 진화의 방향성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다.
이번 협업은 단기 실증을 넘어 장기 수익 모델까지 겨냥한다. 단순 로봇 판매가 아닌, 운영·관제·유지보수를 포함한 구독형 서비스 모델로 사업화가 가능하다. 기존 B2C 중심에서 B2B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로 확장하는 전략이다.
더 크게 보면, 현대차의 병원 진출은 도시 단위의 실내 이동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포석이다. 병원은 스마트시티의 축소판이다. 복잡한 사용자 구성, 보안 요구, 동선 관리, 에너지 효율 등 도시 기능이 농축돼 있다. 병원에서의 성공은 지하철, 공항, 쇼핑몰, 복합환승센터 등 다양한 공간으로의 확장 가능성을 뜻한다.
자동차는 이제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실내를 자유롭게 누비고, 사람 곁을 지키며, 서비스를 연결하는 존재로 바뀌고 있다. 로봇은 그 전환의 매개다. 현대차가 병원 문을 두드린 이유는 결국, 모빌리티의 본질을 다시 묻기 위한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