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대학생들 사이에서 필독서처럼 읽히던 책이 있었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다. 전체주의와 파시즘의 뿌리를 인간 심리에서 찾으려 한 이 책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시대의 지성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지 80여 년이 지났고, 한국 사회도 큰 변화를 겪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책장을 넘기면, 오히려 오늘의 대한민국을 꿰뚫어보는 듯한 통찰에 놀라움마저 느껴진다. 프롬은 중세 봉건사회가 인간에게 정체성과 소속감을 제공했다고 본다. 가문, 종교, 신분이라는 틀 안에서 사람들은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근대의 시작과 산업혁명의 도래는 인간을 제도와 전통의 굴레에서 해방시켰다. 더 자유롭고 더 풍요로워졌지만, 동시에 외로움과 불안도 깊어졌다. 모든 선택과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