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1909년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를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어도, 그의 가족이 겪은 고난과 희생, 특히 둘째 아들 안준생의 선택과 그 후손들의 삶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안중근 의사가 의거를 단행할 당시, 그의 두 아들은 각각 6세와 4세였다. 둘째 아들 안준생은 어린 나이에 하얼빈 감옥에서 아버지를 면회해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형 안분도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가족은 일제의 감시 아래 조선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하얼빈에서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그들의 고난을 접한 상하이 임시정부는 가족을 상하이로 이주시키고 거처와 생활비를 지원했으나, 재정적 한계로 인해 충분한 도움을 주지 못했다. 가족은 다시금 극심한 가난과 감시 속에서 힘겹게 버텼다. 이러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