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빈대떡과 보리문디, 서민들의 생존 전략이 된 언어

news1657 2025. 3. 8. 08:45
728x90

칼럼 이미지 사진 21

 

한국에서 음식의 명칭은 주재료를 반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찹쌀떡, 배추전처럼 주요 재료를 강조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빈대떡은 빈대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 빈대라는 벌레 이름이 붙어 있다.

 

본래 빈대떡은 녹두로 만든 전을 의미했다. 녹두는 조선 시대에 흔한 식재료가 아니었다. 쌀보다 귀했고, 서민들에게는 쉽게 접할 수 없는 곡물이었다. 녹두전은 주로 양반가에서 손님 접대용으로 사용되었으며, 막걸리와 함께 제공되는 고급 요리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를 만드는 사람은 하인들이었고, 부엌 한쪽에서 녹두전이 부쳐지는 모습을 신기하게 지켜보는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서민들에게 녹두전은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보리밥조차 배불리 먹기 어려운 시절, 녹두전은 더욱 귀한 음식이었다. 그렇다면 서민들은 왜 이 귀한 음식을 빈대떡이라 불렀을까?

 

아이들이 녹두전을 먹고 싶다고 조르면, 해줄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이 더욱 안타까웠을 것이다. 그래서 둥글고 납작한 모양이 가렵고 귀찮은 빈대 모양과 흡사해 빈대처럼 생겨서 맛이 없다고 달랬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조선시대 서민들이 먹기 어려운 귀한 음식에 부정적인 별명이 붙은 사례가 종종 있다. 밀가루 대신 쌀가루나 잡곡가루로 만든 양반떡을 서민들은 개떡이라 불렀다.

 

녹두전은 기름이 넉넉히 들어가야 하는 음식이었기 때문에 서민들에게는 장날이나 특별한 행사에서나 겨우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양반들은 녹두전이라 불렀지만, 서민들은 빈대떡이라 부르며 일종의 거리감을 두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크다. 언어는 다수가 지배하는 속성상 시간이 지나면서 빈대떡이라는 명칭이 보편화되었고, 이제는 녹두가 들어가지 않은 전조차 빈대떡이라 불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비슷한 사례로 경상도에서 친근한 사람을 부를 때 쓰는 보리문디가 있다. 원래 문디는 나병 환자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친근하고 소중한 사람을 부를 때 문둥이라는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을까?

 

과거 서민들은 권력층에 의해 가족을 빼앗기는 일이 빈번했다. 예쁜 딸은 양반들이 데려가기도 하고, 건장한 아들은 강제 징집의 대상이 되었다. 이를 막을 힘이 없었던 서민들은 현실적인 방어 수단을 찾아야 했다. 소중한 사람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움으로써 남들의 관심을 피하고자 했던 것이다.

 

산이 많은 경상도 지역은 지리적으로 척박한 환경 탓에 반어적이고 거친 표현이 발달했다. “아이고, 이 미친 놈아같은 표현이 실제로 친구를 부를 때 자주 사용됐다. 이러한 언어적 전략은 귀하고 가까운 사람을 지키기 위한 방편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친근함을 담은 표현으로 변모했다. ‘보리문디도 보릿고개의 어려움을 겪은 문둥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더 강해지면서, 경상도 사람들의 삶 속에서 애칭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감정과 생존 방식이 반영된 산물이다. 빈대떡과 보리문디는 서민들이 현실적 어려움을 피하고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언어적 지혜였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