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산 아래와 산 위,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news1657 2025. 4. 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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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미지 사진 67

 

1971, 두 명의 물리학자가 항공기에 원자시계를 싣고 지구를 한 바퀴 비행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이 실험에서 비행기의 시계와 지상에 남겨둔 시계는 눈에 띄지 않지만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지상보다 높은 고도에 있는 시계가 아주 조금 빠르게 움직였던 것이다. 이후 위성을 이용한 GPS 기술에서도 같은 현상이 반복적으로 관측됐다. 고도가 다르면 중력도 달라지고, 그에 따라 시간의 흐름도 달라진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시간의 흐름이 관측자의 위치, 속도, 중력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1, 1, 1시간은 결코 고정된 기준이 아니라는 거다. 관점에 따라,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등장인물들이 중력이 강한 행성에서 몇 시간만 보내고 돌아오자 지구에서는 수십 년이 흘러 있었다는 설정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상상이 아닌 이유다.

 

하지만 이런 상대적 시간 개념과 달리, 인간 사회는 오히려 시간의 절대화를 선택해왔다. 산업혁명 이후, 시간은 생산성과 효율을 측정하는 기준이자 통제의 수단이 됐다. 출퇴근 시간, 점심 시간, 마감 시간 등 삶의 리듬은 정해진 시각에 맞춰 움직이도록 설계됐다. 더 많은 일을 더 빠르게 해내는 것이 곧 성공의 척도로 여겨졌고, 그렇게 인간은 스스로 만든 시간 체계에 종속되는 삶을 선택하게 됐다.

 

시간 통제의 대표적 사례는 중국의 단일 시간제다. 중국의 동쪽과 서쪽 끝은 4시간 가까운 시차가 있지만, 베이징 시간만으로 국가를 운영한다. 이러다 보니 베이징과 3시간 시차가 나는 신장지구는 여름엔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아침이 시작되고, 겨울엔 해가 저문 뒤에도 한참을 더 일하는 생활이 이어진다. 그 결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문화가 퍼졌고, 이를 정체성 약화를 노린 우민화 정책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아프리카는 동서로 최대 4시간의 시차를 갖지만, 과거 식민 지배 시절에는 행정 편의를 위해 몇몇 지역이 강제로 동일한 시간대를 공유한 적이 있다. 독립 이후 각 국가는 자국의 지리와 생활 리듬에 맞는 시간대를 설정하며 자율성과 정체성을 회복해갔다. 시간의 표준이란 결국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문화와 권력, 생존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시간은 어쩌면 흐르는 실체가 아니라, 느끼고 살아내는 것일지 모른다. 어떤 하루는 길게 늘어지고, 어떤 하루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시간은 숫자보다 감각에 가깝고, 물리보다 기억에 가깝다. 결국 시간은 우리 안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바쁘다고 느낄 때일수록 잠시 멈춰야 한다. 그 멈춤은 단순한 쉼이 아니라, 시간을 되찾는 연습이다. 시계는 앞으로만 가지만, 삶은 잠시 멈추고 돌아볼 수 있다.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시간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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