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남부 해역에는 바다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수상가옥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땅보다 물을 더 가까이 두고 살아간다.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고 조개를 캐며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은 바자우(Bajau)라고 불리는 수상 민족이다. 전통적으로 배 위나 해상 주택에서 생활해 온 이들은 땅에 정착하지 않고 바다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독특한 문화를 이어왔다.
바자우 족은 별다른 잠수 장비 없이, 맨몸으로 수심 수 미터 아래에서 10여 분간 잠영이 가능하다. 일반인의 기준에서 보면 거의 믿기 힘든 수치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물속에서 30초에서 1분 정도 숨을 참을 수 있다. 심호흡을 한 뒤에도 1분을 넘기기 어렵고, 훈련된 수영선수나 프리다이버조차 2~3분 이상 버티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점에서 바자우 족의 잠수 능력은 신기에 가깝다.
2018년 세계적인 과학 저널 '셀(Cell)'에 그 이유가 실렸다. 노르웨이 오슬로대와 미국 하버드대의 공동 연구진은 바자우 족의 신체 구조를 CT와 초음파로 정밀 측정한 결과, 비장의 크기가 일반인보다 평균 50% 이상 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비장은 인체가 무산소 상태에 처했을 때 산소를 포함한 적혈구를 혈액 속으로 방출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비장이 클수록 체내에서 산소를 보유하고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이는 무호흡 잠수 능력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연구진은 바자우 족이 PDE10A라는 유전자에서 특정한 변이를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 유전자는 비장의 크기를 조절하는 데 관여하는 것으로 보이며, 그 변이가 오랜 세월 바닷속에서 생계를 유지한 생활 방식과 연결돼 자연선택을 통해 강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즉, 물속에서 더 오래 숨을 참을 수 있는 신체적 특성이 생존에 유리했고, 그것이 유전적으로 전해졌다는 설명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유전적 특성이 바자우 족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계에서는 이런 유전적 특성이 전 세계 인구의 약 1~3퍼센트에게도 존재한다고 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에서 물속에 장시간 머무를 일이 없기 때문에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간다. 실제 생활 환경과 요구가 없으면 유전적 가능성은 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바자우 족은 매일의 삶이 곧 바닷속에서의 활동이기에 그러한 특성이 실제로 작동하고, 세대를 거쳐 유전되며 강화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환경에 따라 생존 방식뿐 아니라 신체 구조마저 변화시켜 왔다.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폐활량이 크고, 사막 지대 사람들의 피부가 자외선에 강한 것처럼, 바다 위에 살아온 이들에게는 그에 맞는 생리적 적응이 일어난 것이다. 바자우 족의 사례는 인간이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적응해 왔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다.
흥미로운 점은, 바다에서 평생을 살아온 바자우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육지에 오르면 멀미 증상을 겪는다고 한다. 우리는 흔들리는 배에 오르면 멀미를 하지만, 이들은 단단하고 정지된 땅을 밟으면 멀미를 한다. 일명 '육지멀미'다. 흔들림이 일상이었기에 고정된 환경이 오히려 몸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생활상의 불편함이 아니라, 인간의 몸이 자신이 속한 환경에 맞춰 얼마나 정교하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생리적 반응이기도 하다.
바자우 족의 삶은, 인간이 환경에 얼마나 유연하게 적응해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다. 바닷속에서 숨 한 번으로 10여 분을 버틸 수 있는 능력, 출렁이는 물 위가 곧 집이 되는 생활 방식, 그리고 육지를 낯설어하는 몸의 감각까지, 모두 인간이라는 종이 지닌 놀라운 적응력의 표현이다. 우리가 ‘정상’이라 여기는 삶의 조건들이 보편적인 것이 아님을 이들의 존재는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