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콘클라베, 이성의 시대 속 신비의 욕망

news1657 2025. 5. 8.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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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미지 사진 87

 

지금 로마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서는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가 진행 중이다. 수많은 인파가 성베드로 광장을 메우고, 연기의 색깔 하나에 세계의 시선이 쏠린다. 콘클라베는 단지 종교 의식이 아니다. 중세의 전통이 21세기에도 살아 숨 쉬는,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된 지도자 선출 절차중 하나다.

 

콘클라베라는 말은 라틴어 cum clave, 열쇠로 잠그다에서 유래했다. 말 그대로 문을 걸어 잠그고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추기경들만의 공간에서 투표가 이루어진다. 전 세계 13억 가톨릭 신자를 대표해 약 120명의 추기경들이 교황을 선출하며, 이들 중 80세 이상은 투표권이 없다. 이들은 모든 통신 수단을 반납한 뒤 시스티나 성당에 머물며 하루 네 차례 투표를 반복한다. 흰 연기가 피어오르면 새 교황이 탄생한 것이다.

 

콘클라베의 제도화는 1274년 제2차 리옹 공의회에서 비롯됐다. 당시 교황 선출은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수년간 공석이 지속되는 일이 잦았다. 특히 1268, 교황 클레멘스 4세가 사망한 뒤 추기경단은 무려 29개월 동안 후임자를 정하지 못했다. 이탈리아 비테르보 시민들은 성당 지붕을 뜯고 음식 공급을 끊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추기경들을 압박했고, 이 사건은 콘클라베 제도를 공식화하는 계기가 됐다.

 

콘클라베는 지금도 중세의 형식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다. 휴대전화는 물론 외부와의 모든 연락이 차단되며, 전자기기 사용도 금지된다. 외부 전파를 차단하는 장비까지 동원된다. 당선자는 단순 과반이 아닌, 전체 투표자의 3분의 2 이상 득표를 얻어야 한다. 과거에 비해 절차는 간결해졌지만, 핵심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1503년 율리오 2세 선출 콘클라베는 불과 10시간 만에 끝났다. 반면, 최장기 콘클라베는 1268년부터 1271년까지 무려 33개월간 이어졌다. 2005년 베네딕토 16세는 나흘 만에,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틀 만에 선출됐다. 정보와 의사결정 구조가 정비된 현대의 추기경단은 중세보다 훨씬 빠르게 합의에 이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누구나 투표권을 갖는 보통선거의 원칙과 달리, 콘클라베는 소수 고위 성직자만 참여할 수 있는 폐쇄적 구조다. 현대 민주주의가 중시하는 투명성, 책임성, 참여성의 원칙과는 거리가 멀다. 당선자가 종신직이라는 점도 민주주의와 충돌한다. 대부분의 민주 정치제도는 임기제와 권력 순환을 전제로 하지만, 콘클라베에서 선출된 교황은 별도의 임기 없이, 죽거나 자진 사임하지 않는 한 직위를 유지한다.

 

이런 방식은 종교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교황은 단순한 행정 지도자가 아니라 신의 대리자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위적 조율보다는 신의 뜻에 맡겼다는 상징성이 중요하다. 인간이 세운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신이 선택한 결과처럼 보이도록 설계된 것이다. 연기를 통해 선출 결과를 알리는 고풍스러운 방식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어쩌면 자신이 만든 합리적 제도 속에서도 여전히 신의 뜻을 빌리고 싶어 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지만, 영국이나 일본처럼 군주의 얼굴을 앞세우는 입헌군주국이 있고, 로마교황청처럼 신정 통치의 상징을 존중하는 곳도 존재한다. 민주주의 시대에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인간 스스로의 약함과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하나의 방증이기도 하다.

 

절대적 합리보다는 절반의 신비를 받아들이는 체제. 콘클라베는 그 욕망을 가장 오래된 형식으로 구현하고 있는 제도다. 신의 음성을 듣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 보이지 않는 질서에 기대는 정치의 오래된 그림자. 이성의 시대 속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연기의 색깔 하나에 의미를 부여한다. 콘클라베는 그렇게, 닫힌 문 안에서 시대의 역설을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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