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이 공익법인과 비영리법인을 활용해 지배력을 우회적으로 강화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공익재단이 계열사 주식을 대량 보유하면서 본래의 공익적 취지보다 기업 지배구조 유지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30대 그룹 소속 38개 공익재단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은 234곳에 달했다. 2017년 76개 기업에서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주목할 점은 이들 재단이 보유한 주식의 93.1%가 소속 그룹의 계열사 주식이라는 점이다. 이는 사실상 대기업 지배력 강화를 위한 도구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러한 흐름은 기부금과 배당수익의 변화에서도 감지된다. 2017년 2,392억 원이었던 계열사 기부금은 2023년 1,688억 원으로 29.4% 감소했다. 반면, 계열사 배당수익은 같은 기간 608억 원에서 1,937억 원으로 급증했다. 공익재단이 기부를 통해 공익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배당수익을 쌓으며 기업 지배력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2020년 12월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의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제한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법망을 피해 다양한 우회 전략을 동원하고 있다. 주식 가격이 낮을 때 공익법인에 주식을 넘긴 후 주가 상승을 기다리거나, 배당수익을 통해 지속적으로 자산을 불리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 과정에서 공익법인이 본연의 역할을 망각한 채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대기업이 자사 주식을 공익법인에 저가로 넘긴 후 주가 상승을 유도하면, 공익법인은 세금 부담 없이 막대한 자산을 보유할 수 있다. 이후 배당수익을 극대화하거나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활용된다. 이는 공익법인의 본래 목적과 동떨어진 행태이며, 공정경제 실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공익법인이 기업 지배구조 강화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공익성과 비영리성을 강조하는 법적 기준을 명확히 하고, 공익법인의 주식 보유 한도를 더욱 엄격히 제한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공익법인의 기부금과 배당수익 활용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 본래의 목적에 부합하는 활동이 이루어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공익법인이 진정한 의미의 공익을 실현하는 기관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뿐만 아니라, 이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법과 제도의 역할도 중요하다. 현행 규제의 허점을 보완하고 실효성 있는 감독 장치를 마련해야 공익법인이 기업의 편법적 지배력 유지 수단이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