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계절 음식 ‘도다리쑥국’. 입춘이 지나고 따스한 남풍이 불기 시작하면 남해안 식당가는 도다리쑥국 간판을 내걸고 손님맞이에 나선다. 도다리와 쑥, 두 재료가 만나 봄을 담아낸 이 메뉴는 제철 건강식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다.
그러나 이 음식의 레시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중의 인식과 실제 조리 목적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상업 마케팅’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자 오해의 음식이다.
우선 ‘봄 도다리’의 실체를 따져보자. 일반적으로 도다리는 봄이 제철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정확하지 않다. 도다리는 산란을 앞두고 2~4월 연안으로 몰려드는데, 이 시기의 도다리는 아직 성체가 되지 않은 어린 개체들이 대부분이다. 살집이 부족하고, 산란 직전 혹은 직후라 체력도 떨어져 있다. 다른 고기들과 함께 어린 것들이 많이 잡히는데, 상품성이 떨어져 버리기엔 아깝고, 식용으론 애매한 크기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쑥국의 육수용 재료로 함께 쓰여 왔다. 맛이나 영양 면에서는 오히려 겨울철 도다리가 더 낫다.
반면 또 다른 주재료인 쑥은 진짜 ‘제철’이다. 이른 봄에 자라는 어린 쑥은 향이 짙고 영양도 뛰어나다. 쑥에는 해독 작용을 하는 클로로필이 풍부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며 면역력을 높이는 효능 덕에 예로부터 봄철 보약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경남 통영과 남해에서는 멸치쑥국, 전남 해안 지역에서는 조기쑥국, 제주에서는 은갈치쑥국 등 지역마다 다양한 쑥국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들 모두 쑥을 중심에 두고 국물용 생선을 곁들인 구조다.
도다리쑥국 역시 이러한 ‘쑥 중심 요리’ 계보의 하나다. 본래는 쑥을 먹기 위한 국이었고, 도다리는 국물 맛을 더하기 위한 부재료였다. 비린 맛을 잡고 감칠맛을 내는 조미용 역할이었다. 하지만 도다리가 고급 어종으로 인식되면서 어느 순간 쑥은 조연으로 밀려났고, ‘봄 도다리’라는 이미지가 메뉴의 전면으로 부각됐다.
이러한 변화는 지역 축제나 방송 콘텐츠에서 도다리가 집중 조명되면서 소비자들은 “봄엔 도다리쑥국”이라는 공식을 당연시하게 됐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이 굳어지며 제값에 향긋한 쑥국을 먹으면 될 일을, 더 비싼 돈을 내고 도다리쑥국을 찾는 소비 구조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실은 ‘도다리 이름값’에 돈을 지불하는 셈이다.
도다리쑥국이 봄의 정취를 담은 훌륭한 계절 음식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멸치쑥국, 조기쑥국, 은갈치쑥국 등과 마찬가지로, 봄에 즐기기 좋은 쑥국의 일종이라는 본래 의미에서 크게 벗어난 과대 해석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물론 금전적 여유가 있다면 도다리쑥국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도다리 유통에도 도움이 되고, 지역 상권에도 기여할 수 있다.
다만, 쑥국을 먹기 위해 도다리쑥국을 찾는 일과, 귀한 도다리를 먹기 위해 도다리쑥국을 찾는 일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후자의 경우엔 알고도 먹는 ‘해학 있는 소비’로 전승되길 바란다. 도다리쑥국은 음식의 본질보다 이미지가 앞설 때 어떤 오해가 생기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봄의 별미는 결국 봄의 재료가 주인공일 때 비로소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