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지역을 휩쓴 대형 산불이 주택가를 덮치고 인명 피해까지 내며 비극으로 이어졌다. 뉴스 화면을 가득 메운 연기와 불길은 국민 모두에게 충격을 안겼다. 산불은 언제나 재난으로 인식된다. 꺼야 하고, 막아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자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간섭이 없던 시절, 산불은 수천 년 동안 반복돼 온 생태계 순환의 일부였다. 태양열, 마찰, 낙뢰 등으로 시작된 자연 발화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꺼진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거나 습도가 오르고, 탈 수 있는 연료가 바닥나면 불은 자연스럽게 진화된다. 불은 때로 스스로를 통제하는 자연의 일부였다.
이 과정을 통해 고사한 식물은 사라지고, 토양은 새로운 영양분을 얻는다. 빽빽한 수목 아래 햇빛이 닿지 않던 땅에는 다시 광합성이 시작되고, 숲은 새 생명으로 채워진다. 일부 식물은 열 자극 없이는 씨앗이 발아하지 않는다. 산불이 없는 숲은 언뜻 건강해 보이지만, 낙엽과 고목이 쌓이면서 병해충이 번성하고, 생태계의 순환은 멈춘다.
문제는 인간이 불을 ‘너무 잘 막기 시작하면서’ 생겼다. 산불을 무조건적인 재난으로 간주하고 철저히 차단한 결과, 오랜 세월 타지 않은 산림에는 낙엽과 가지, 고사목이 두껍게 쌓였다. 이는 일종의 ‘연료 저장소’가 되었고, 기후 위기로 인한 고온·건조 일수 증가가 겹치며 작은 불씨 하나가 걷잡을 수 없는 대형 화재로 번지는 구조가 형성됐다. 소방당국이 말하는 ‘가연물 적층 현상’이다.
산불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나야 할 불이 제때 나지 못했던 게 문제일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나 호주처럼 정기적으로 산불이 발생하는 지역에서는 오히려 불을 계획적으로 내어 대형 화재를 예방한다. 일종의 ‘처방적 방화(prescribed burning)’다. 구역을 나눠 사전에 산불을 일으켜 연료를 줄이는 방식이다. 생태계의 자정작용을 돕는 동시에, 통제가 가능한 환경 안에서 불을 관리한다.
우리도 이제 산불을 단순한 재난이 아닌, 관리와 조율의 대상으로 바라봐야 한다. 불이 나야 할 시기에 나지 않으면, 언젠가 더 큰 불로 되돌아온다. 자연의 섭리를 무조건 억누르는 것은 또 다른 파괴로 이어진다.
자연은 불을 통해 스스로를 회복한다. 그러나 인간의 거주지가 그 회복 범위 안에 들어온 이상, 방치도 억제도 해답이 될 수 없다. 해법은 불(火)과의 공존에 있다. 불이 나야 할 곳에서는 나도록 허용하되, 사람이 사는 곳에는 닿지 않도록 철저히 방비해야 한다.
산불은 단지 끄는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이 균형을 되찾는 방식이며, 생명의 순환을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다. 진정한 방재는 불을 막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불을 이해하고 다스리는 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