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인간을 전시했던 시대, 클림트 초상화가 던지는 질문

news1657 2025. 3. 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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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미지 사진 53

 

188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인종 전시회 당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초상화 한 점이 공개됐다. 주인공은 아프리카의 한 부족 출신 왕자다. 이 작품은 2021, 한 수집가가 빈의 갤러리에 반입하면서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복원과 감정을 거쳐 클림트의 진품으로 최종 확인됐다. 현재 판매가는 약 240억 원에 이른다.

 

작품의 미술사적 가치도 크지만, 이 초상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그려졌던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클림트는 이 그림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인종 전시회기간에 제작했다. 이 전시회는 단순한 문화 교류의 장이 아니었다. 식민지 출신 사람들을 울타리에 가둬놓고, 대중이 이국적인 존재로 구경하고 소비하게 만든 이른바 인간동물원의 일환이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유럽과 일본에서는 이러한 인간동물원이 적지 않게 열렸다. 당시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 원주민들을 야만인으로 규정했고, 이들을 과학적·인류학적 전시라는 명분 아래 전시장에 세워 구경거리로 만들었다. 1958년 벨기에는 콩고 출신 사람들을 동물원 우리에 넣어 전시했고, 독일은 민족전시회(Völkerschau)’라는 이름 아래 비백인을 공개 관람 대상으로 삼았다. 일부 전시 대상자는 유럽에 도착하기도 전에 병에 걸려 숨졌고, 죽은 뒤에는 해부되거나 박제되기도 했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1903년 오사카 박람회에서는 조선인을 비롯한 여러 아시아인을 학술 전시물이라는 명목으로 철창에 가둬 전시했다. 관람객이 돈을 더 내면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전시된 사람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했다. 1907년 같은 박람회에서는 조선 남녀 두 명이 조선 동물로 지칭되며 관람 대상이 됐고, 이들은 잠시 앉아 있기만 하면 돈을 주겠다는 말에 속아 일본으로 끌려왔다. 인간을 구경거리로 만든 이 같은 행위는 제국주의의 우월감과 대중의 소비 욕망이 결합한 결과였다.

 

이러한 전시는 일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당시 사회 구조를 반영한 것이다. 차별을 정당화하는 우생학과 인종주의, 이국 문화를 소비하려는 박람회 산업, 그리고 국가의 정치적 의도가 얽히면서 인간 전시는 공공의 행사로 자리잡았다. 예술, 과학, 정치가 맞물려 만들어낸 구조적 차별이었다.

 

클림트의 초상화도 이 맥락 속에 존재한다. 작가가 인물에게 연민을 느꼈는지, 단순한 기록물로 접근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그림이 제작된 환경 자체가 인간을 전시 대상으로 취급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인물화가 아니라, 그 시대의 구조를 반영한 기록이기도 하다.

 

인간 내면에는 지금도 이러한 차별의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은 더 세련된 방식으로 타인을 구경하고 판단하며, 누군가의 약점과 고통을 콘텐츠로 소비하는 문화가 일상화됐다. 인간을 전시하던 시대는 끝났지만, 인간을 대상화하는 시선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은 언제나 대치 상태에 있다. 공감과 감각, 윤리적 시선이 사라질 때, 인간은 자신의 잔인함을 정당화한다. 클림트의 초상화는 인간이 사물과 타인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잃을 때, 잔인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다시 한 번 환기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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