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계에는 사냥도 채집도 하지 않고, 오직 죽은 동물의 사체만을 먹는 생물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청소동물(scavenger)’이라 부른다. 그중에서도 스스로 먹이를 사냥하지 않고, 이미 죽은 뒤에야 접근하는 청소 전문종들이 있다. 이들은 인간에게 혐오감이나 불쾌함을 주기도 하지만, 생태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대표적인 예가 독수리다. 독수리는 날카로운 부리와 넓은 날개를 가진 맹금류지만, 일반적인 의미의 사냥은 하지 않는다. 대신 병든 동물이나 이미 죽은 사체를 찾아 하늘을 선회한다. 머리에 깃털이 없는 ‘대머리’ 형태도 독특하다. 이는 사체를 뜯어먹을 때 피나 체액이 깃털에 묻지 않도록 진화한 결과다.
한국어에서 ‘독수리’라는 말은 ‘수리’와 혼용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수리’는 먹이를 직접 사냥하는 맹금류로, 영어로는 ‘이글(Eagle)’이다. 반면, 우리가 독수리라 부르는 동물은 주로 사체를 먹는 청소동물로, 영어로는 ‘벌처(Vulture)’에 해당한다. 외형은 비슷해 보여도, 생태적 위치와 행동은 완전히 다르다.
독수리 외에도 콘도르, 하이에나, 도마뱀류, 불가사리, 청소새우 같은 해양 생물들도 사체만을 섭취하는 청소동물로 분류된다. 이들은 육지와 바다를 가리지 않고 죽은 생물을 빠르게 처리하며, 생태계를 정화한다. 이들이 사라지면 자연은 곧 부패와 질병으로 물든다.
죽은 동물의 사체는 부패하면서 각종 세균과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이는 질병 확산으로 이어지고, 다른 동물들까지 위험에 빠뜨린다. 그러나 청소동물은 이 사체를 신속하게 제거하며, 생태계의 마지막 방어선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인간이 이들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거나 오해해왔다는 점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독수리를 ‘불결하다’는 이유로 박멸한 사례도 있다. 그 결과 광견병, 탄저균, 조류독감 등 각종 전염병이 급속히 확산되며 생태계 균형이 무너졌다. 죽음을 먹는 생물이 있어야 생명이 순환한다는 자연의 원리를 간과한 것이다.
청소동물은 생태계의 주변부에 머물지만, 가장 근본적인 순환을 책임진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피하고 사체를 꺼린다. 그러나 자연 상태에선 누군가 죽은 생명을 처리해야만 새로운 생명이 자란다. 그 ‘누군가’가 바로 청소동물이다.
우리는 종종 자연을 위에서 내려다보려 한다. 그러나 자연의 진짜 질서는 땅바닥에서 시작된다. 썩어가는 고기, 흘러내리는 피, 흙 속으로 스며드는 체액을 정리하는 존재들이 있을 때 비로소 숲은 자라고, 생명은 이어진다. 죽은 생물을 처리하는 이들이 있어야 생태계의 순환이 유지된다. 눈에 띄지 않지만, 청소동물은 자연이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의 가장 밑바닥에서 그 기반을 떠받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