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한양 너섬이 서울 여의도가 되기까지

news1657 2025. 3. 9.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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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미지 사진 23

 

서울 여의도는 국제적인 금융도시 뉴욕의 맨해튼에 종종 비유되곤 한다. 하지만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여의도는 누구도 거주하지 않는 불모지였고, 한강물이 자주 범람하는 탓에 사람이 살기 어려운 땅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접근조차 어려운 섬이었고, 유배지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여의도의 옛 이름은 '너섬'이었다. ‘그 섬, 너나 가져라라는 의미에서 유래한 이 이름은 당시 여의도가 얼마나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졌는지를 보여준다. 여의도(汝矣島)는 너섬의 일본식 한자어다.

 

여의도 개발은 일제강점기부터 본격화됐다. 1916, 일제는 한강을 횡단하는 최초의 다리인 한강철교를 놓아 서울과 여의도의 연결성을 높였고, 1924년에는 여의도에 비행장을 조성했다. 이곳은 국내 초창기 비행장으로, 김포공항 개항 전까지 군사·민간 항공의 거점이었다. 한국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이 여의도에서 비행 시범을 보이며 많은 이들에게 하늘을 나는 꿈을 심어주기도 했다. 여의도 비행장은 당시 넓은 평야지대였으나 활주로 시설이 미비해, 기상 조건이 좋지 않을 경우 비행기 착륙이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해방 이후에도 여의도는 여전히 개발되지 않은 허허벌판으로 남아 있었다. 1960년대까지도 여의도는 대규모 홍수 피해를 입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박정희 정부 시절에는 여의도 주변에 제방을 쌓는 공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1970년대 정부는 국회의사당 이전 등 대규모 개발을 추진했다. 당시 국회의사당을 여의도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결국 1975년 현재의 국회의사당이 완공되면서 여의도는 정치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박정희 정부 시절 여의도 활주로는 북한의 김일성 광장을 모방한 ‘5.16 광장으로 변모하며 군사 정권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이후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군사정권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여의도광장으로 개명되었고, 1999년 지금의 여의도공원이 됐다.

 

현재 여의도는 동·서로 나뉘어 기능이 구분된다. 서여의도에는 국회의사당, KBS 본사, 주요 정부기관 등이 위치해 정치와 언론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으며, 동여의도는 금융권과 대형 오피스 빌딩, 고급 주거지가 밀집해 있다. 특히, 국제금융도시를 표방하며 글로벌 금융사들이 속속 입주하고 있으며, IFC 서울과 파크원 같은 초고층 랜드마크 빌딩들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여의도 발전에는 걸림돌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여의도의 절반을 차지하는 서여의도의 건물 높이 제한이다. 국회의사당보다 높은 건물이 들어설 경우 저격수 공격 가능성이라는 논리를 근거로 12층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도록 한 규제다. 이는 현대 도시 개발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비합리적이다. 서울시는 2023년 해당 규제 철폐를 추진했지만, 국회는 도시 경관 유지국회의 보안 문제등을 이유로 이를 무산시켰다. 일부에서는 국회가 스스로의 상징성을 지키기 위해 발전을 막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여의도는 버려진 땅에서 대한민국 경제·정치 중심지로 성장했다. 하지만, 국제금융도시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특히 동서 여의도의 기형적인 비대칭 성장은 차일피일 미룰 일이 아니다. 금융과 정치를 함께 품은 이곳이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좌우될 것이 아니라 미래에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경제 중심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균형 잡힌 정책적 접근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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