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하늘을 가르는 마천루들. 우리가 익숙하게 바라보는 초고층 빌딩 중 일부 옥상에는 의외의 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방공포대다. 군사기밀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위치는 공개되지 않지만, 일부 초고층 건물은 군사시설 보호법에 따라 방공포대 설치 대상이 된다.
1976년 착공된 여의도 63빌딩은 수도권 방공망이 지금처럼 촘촘하지 않았던 시절,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로 평가받았다. 63빌딩은 당시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서, 높은 곳에 방공포대를 설치하면 적의 공중 침투를 조기에 탐지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요충지가 될 수 있었다.
최근에는 63빌딩보다 훨씬 높은 롯데월드타워(555m) 등이 등장하면서, 방공포대의 위치도 변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정보는 군사 기밀로 분류되어 있어 확인이 어렵다.
현행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에 따르면 일정 높이를 초과하는 초고층 건물을 지을 때 군 당국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 필요할 경우 방공포대 설치 요구를 받을 수도 있다. 다만, 모든 고층 건물에 방공포대가 배치되는 것은 아니며, 일반적으로 해당 지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군사적 요인을 고려해 설계되는 경우가 많다.
초고층 건물을 세우려는 건축주 입장에서는 이러한 규정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방공포대 설치는 단순히 옥상의 일부 공간을 제공하는 문제가 아니다. 건물 설계를 변경해야 하고, 유지·보수 비용까지 고려해야 한다. 군인들만 다닐 수 있는 별도의 이동공간도 마련해야 한다. 군사시설이 포함되면 옥상의 상업적 활용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는 초고층 건물을 계획하는 기업들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대한민국은 법적으로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국이다. 이러한 현실은 서울의 초고층 빌딩에도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주요 도시의 마천루는 경제력과 기술력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여겨진다. 하지만 서울의 마천루들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전쟁 대비 시설은 서울 시내 곳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서울과 전국 곳곳에는 유사시 비상 대피소로 활용될 수 있는 민방위 대피호가 마련되어 있다. 서울 지하철역과 1970~80년대에 지어진 일부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공습 상황을 대비한 대피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또한, 국회 지하에는 전시 상황을 대비한 비밀 벙커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부 시설이 과거 공개된 바 있다.
과천 정부청사와 과천시내 사이에는 지하 통로가 있다. 이는 비상시 정부 관계자들의 신속한 이동과 안전 확보를 위한 시설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시설들은 평상시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지만, 유사시에는 중요한 군사적·행정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세계 주요 도시들은 인공지능을 활용한 스마트 빌딩과 친환경 기술이 결합된 미래형 건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서울의 초고층 빌딩들도 이러한 흐름을 따르고 있지만, 일부 건물은 군사적 요인을 고려해 설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경제적·기술적 발전과 안보적 필요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서울의 스카이라인은 최첨단 도시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냉전의 흔적을 간직한 채 유지되고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발전과 군사적 대비가 공존하는 다소 어색한 동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