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세 나라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웃이다.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오랜 역사 속에서 문화 교류도 활발히 이어져 왔다. 그러나 새해 인사말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이 세 나라가 얼마나 다른 정서와 국민성을 지녔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인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한다. 중국인은 “신녠콰이러(新年快乐)”, 일본인은 “아케마시테 오메데토 고자이마스(あ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라고 인사한다. 겉으로는 모두 한 해의 시작을 기념하며 서로에게 덕담을 건네는 말 같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정서는 확연히 다르다. 단순한 인사말 하나에도 각 나라 고유의 삶의 태도와 문화 철학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중국의 인사말 ‘신녠콰이러’는 직역하면 ‘즐거운 새해’다. 말 그대로 ‘행복한 한 해’를 기원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중국인의 새해 인사는 기원이라기보다는 선언에 가깝다. “올해도 힘들 수 있다. 그래도 즐겁게 이겨내자”는 의지가 담겨 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고난과 현실을 직시하는 문화가 강하다. 낙관도 현실 위에 쌓아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즐겁게 살자’는 표현 속에는 고단한 삶에 지지 않겠다는 결연한 다짐이 배어 있다. 고생을 감추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대신 새해를 계기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살아가자는 태도가 인사말에 녹아 있다.
일본의 새해 인사는 “해가 밝았으니 축하한다”는 뜻이다. 다소 형식적이고 절제된 표현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일본 특유의 정서가 담겨 있다. 지나온 한 해를 무사히 버텨낸 것 자체가 축하할 일이라는 인식, 그리고 그런 시간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되새기는 태도다.
새해를 맞았다고 ‘축하한다’는 표현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인생을 성취보다는 지속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눈에 띄는 성과가 없어도 ‘견뎌낸 시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다. 일본의 새해 인사는 그런 겸허한 생존 의지를 드러낸다. 스스로를 조용히 격려하며 또 한 해를 준비하는 문화가 반영돼 있다.
한국의 새해 인사는 명확하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삶에서 가장 절실한 바람을 가장 직접적인 언어로 표현한다. 한국인은 유독 ‘복’이라는 단어에 민감하다. 복이란 단지 운이 좋은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병 없이 살고, 배고프지 않으며, 무사히 한 해를 보내는 것. 이 모든 삶의 조건이 ‘복’이라는 한 단어에 담겨 있다.
한국인은 왜 이토록 복을 중시하게 되었을까. 한국은 예로부터 외침이 잦았다. 몽골, 여진, 일본, 청, 러시아 등 수많은 외세의 침입이 있었고,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 전쟁과 분단의 근대사 역시 고난의 연속이었다. 한편 국토의 70%가 산악지형인 탓에 농사짓기 어려웠고, 먹고사는 문제 해결도 결코 쉽지 않았다.
한국인에게 ‘풍요’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배불리 먹고, 병치레 없이 살고, 집안에 탈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은 삶을 버티는 원동력이었다. 그렇게 형성된 집단 정서가 ‘한(恨)’으로 응축됐고, 그 ‘한’은 복을 향한 간절한 바람으로 이어졌다.
각국이 새해를 대하는 방식은 이처럼 비슷해 보여도 다르다. 중국은 웃으며 이겨내자고 다짐하고, 일본은 무사히 살아낸 것에 스스로를 격려한다. 한국은 복이 오기를 간절히 빈다. 각 나라가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 고난을 해석하는 방식, 그리고 인간다운 삶을 정의하는 기준이 인사말 속에 드러난다. 그 차이를 정확히 인식할 때, 비로소 공감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