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페이는 글로벌 간편결제 시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시장에서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주요 원인은 애플이 가맹점으로부터 받는 0.15%의 결제 수수료다. 한국 정부는 중소영세업자를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카드사의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강력히 압박해왔고, 이에 따라 국내 카드사들은 지속적인 수익 감소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환경에서 애플페이의 높은 수수료 정책은 한국 시장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최근 애플페이는 국내 교통카드와의 제휴 논의를 진행했으나, 결국 무산됐다. 0.15%의 수수료율을 고수하는 애플페이의 정책이 걸림돌이 됐기 때문이다. 대중성이 높은 교통카드는 무료 사용을 허용하는 전략도 고려할 법하지만, 애플은 프리미엄 서비스 전략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는 한국 시장에서도 수수료 정책을 변경할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반면, 애플은 중국에서는 0.03%의 낮은 수수료율을 적용해 차별적인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한국 시장에서의 수수료 조정 가능성이 더욱 희박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카드사들은 애플페이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현대카드가 가장 먼저 도입하며 시장 반응을 살핀 가운데, 신한카드도 애플페이 출시를 앞두고 약관 심사를 완료했다. 카드사들이 애플페이와 제휴를 맺는 이유는 명확하다. 비록 애플페이 수수료로 인한 단기적인 손실이 존재하지만, 젊은 소비층과 해외 구매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애플페이 도입 후 현대카드는 이용자가 급증하며 카드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문제는 국내 카드업계가 이미 레드오션 상태라는 점이다. 가맹점 수수료 인하 압박과 마케팅 비용 부담 속에서 카드사들은 저마다 생존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지나친 규제는 오히려 애플페이 같은 해외 결제 시스템으로의 자금 유출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있다. 카드사가 자체적으로 간편결제 시스템을 구축해도 애플페이 같은 글로벌 브랜드를 이기기 어렵고, 높은 수수료에도 불구하고 카드사들은 결국 애플페이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
금융당국도 이러한 흐름을 직시해야 한다. 단순히 카드사의 수수료 부담을 줄이기 위한 규제만 강화하는 것은 국내 카드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뿐이다. 애플페이와 같은 해외 결제 시스템이 점점 시장을 장악하면 국내 카드사들은 더욱 불리한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애플페이를 비롯한 해외 결제 시스템과 경쟁할 수 있도록 국내 카드업계에 보다 유연한 정책이 필요하다.
애플페이는 한국 시장을 바라보며 기존의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카드사들은 그런 애플페이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다. 정부의 규제 기조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카드업계는 애플페이라는 '필연적인 선택' 앞에서 더욱 어려운 싸움을 이어가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