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가난한 풍요의 시대, 다이소가 주는 위로

news1657 2025. 4. 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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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미지 사진 61

 

서울 명동역 인근, 12층 건물 전체가 다이소 매장으로 쓰이고 있다. 복층 구조의 매장은 층마다 화장품, 문구, 식기, 청소도구 등 다양한 상품들로 채워져 있다. 가격은 대부분 1,000, 비싸야 5,000원이다. 이처럼 천 원짜리 쇼핑에 수많은 사람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이소는 더 이상 저가 제품을 파는 가게가 아니다. 지금 이 시대의 정서를 반영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고물가, 고금리, 저성장이라는 삼중고 속에서 소비자는 실속과 위안을 함께 찾는다. 다이소는 그런 소비자에게 심리적 풍요를 제공한다. 적은 비용으로도 여러 상품을 살 수 있다는 만족, 가난하지만 풍요로운소비의 경험을 구현해냈다.

 

한때 골목상권 파괴자로 비판받던 다이소는 이제 지역 경제의 촉진제로 평가받는다. 매장이 입점하면 유동 인구가 늘고, 건물 가치도 오른다. 그래서 역세권처럼 다세권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소비자에게는 생활밀착형 편의 공간이고, 임대인에게는 자산 가치 상승 요인이다. 천 원짜리 수세미 하나가 도시 상권의 흐름을 바꿔놓고 있다.

 

이런 성공의 핵심에는 다이소의 가격 전략이 있다. 500, 1,000, 1,500, 2,000, 3,000, 5,000. 6단계로 단순화한 균일가 정책은 소비자에게 선택의 안정감을 준다. 가격 비교의 부담이 없으니 쇼핑은 훨씬 간편해진다. 하지만 이 균일가는 단순한 숫자의 구조가 아니다. 사람들은 이 틀 안에서 공정한 가격이라는 착시를 경험한다. 모두가 같은 가격에 물건을 사지만, 그 안에 담긴 품질과 성능은 제각각이다.

 

이처럼 다이소는 한국형 소비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는 셈이다. 가격은 같지만, 만족은 다르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장터처럼 보이지만, 현명한 소비자일수록 더 많은 가치를 건져 올린다. 시장이 만든 새로운 평등의 형태이자, 소비의 착시가 작동하는 구조다.

 

다이소는 제품 구색과 트렌드 반영에서도 민감하게 움직인다. 하루 20여 개, 한 달 600개에 달하는 신제품이 쏟아지고, SNS에서 입소문이 난 품절템은 빠르게 소진된다. 소비자는 그 희소성에 더욱 끌리고, 매장은 트렌드를 선도한다. 수세미조차 사연 있는 물건이 된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소비자들이 다이소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많이 사도 죄책감이 없다”, “싸니까 망가져도 부담 없다”, “산책하듯 쇼핑할 수 있어 좋다는 말들은 단순한 만족을 넘어 자기 정당화의 언어로 읽힌다. 경제적 여유가 부족해도 나는 잘 소비하고 있다는 자기 확신. 다이소는 바로 그 심리를 정확히 짚어낸다.

 

이러한 소비는 단순히 물건을 사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감정을 사는 일이고, 선택할 수 있다는 자존감을 확인하는 일이다. 비록 천 원짜리일지라도, ‘내가 고른 것이라는 감정이 주는 주체적 소비의 경험이 다이소에서는 가능하다. 유통 철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사회적 서비스에 가까운 구조다.

 

물론 다이소도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해외 소싱 의존도가 높아 환율 리스크에 취약하고, 일부 제품에서는 품질 논란도 있었다. 납 성분이 검출돼 판매가 중단된 세정제 사례는 단적인 예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관련 민원도 꾸준히 늘고 있다. 균일가를 유지하려다 품질을 희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그럼에도 다이소는 여전히 시장의 기적으로 불린다. 시대는 가난을 조롱하지만, 다이소는 그 안에서도 소비의 기쁨을 허락한다. “많이 사도 괜찮다는 자기암시. 그것이야말로 다이소가 이 시대 소비자에게 던지는 가장 강력한 마케팅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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