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를 바다에서 만나면 괜히 만만하게 봤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겉모습은 흐물흐물하고 순해 보여도, 일단 사람 팔에 감기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흡반 수백 개로 바위에 들러붙는 힘이 워낙 강해, 스쿠버다이버들 사이에선 한 번 달라붙으면 장비까지 놓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돈다. 물속에서 괜히 손으로 덥석 잡았다가 팔 전체가 감기고, 조절기를 뺏겨 당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하지만 문어에게는 의외로 웃지 못할 약점이 있다. 문어의 머리처럼 보이는 둥근 부위를 바늘처럼 뾰족한 걸로 톡 찌르면, 그 단단히 달라붙던 문어가 순식간에 발라당 뒤집어진다. 그 순간만큼은 바다의 왕자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힘주고 붙잡고 있던 다리를 풀고, 온몸이 축 늘어진다. 해녀들과 잠수부들은 이를 두고 “급소를 찔렀다”는 표현을 쓴다.
우리가 흔히 머리라고 부르는 그 부위는 사실 내장 덩어리다. 문어의 실제 머리는 눈이 달린 부분이고, 그 위에 자리한 둥근 부분 안에는 심장, 소화기관, 뇌의 일부와 신경절이 몰려 있다. 이 부위는 말하자면 문어의 생명 중추다. 그곳을 자극하면 순식간에 긴장이 풀리고, 움직임도 멈춘다. 팔을 아무리 힘껏 잡아당겨도 떨어지지 않던 문어가 그 짧은 찌르기 한 방에 허무할 정도로 순해진다.
서양에서 문어는 공포의 상징이었다. 거대한 촉수로 배를 끌어당긴다는 크라켄의 전설은 북유럽 항해자들의 두려움이 낳은 괴물 이미지다. 심연에서 솟아오르는 어둠과 혼돈,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공포가 문어의 형상으로 그려졌다.
반면 동양에선 문어를 다르게 보았다. 단어부터 다르다. ‘문어(文魚)’라고 썼다. ‘글월 문(文)’ 자를 붙인 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문어가 다리를 펼치고 물속을 유영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먹물을 묻힌 붓을 휘두르는 듯하다. 팔의 유려한 움직임이 선비의 붓글씨 같다고 여겨졌고, 실제로 붓을 쥔 손처럼 정교한 움직임이 가능하다. 문어의 팔 하나하나는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먹이를 감지하고 도구도 사용할 수 있다. 동양에서는 그 지능과 유려함을 학식과 연결해 본 것이다.
경상도 지역에서 문어는 제사의 필수 음식이다. ‘다리가 많아 자손이 번창하라’는 뜻과 함께, 한 마리 통째로 삶아 올리는 문어는 조상의 자리에 올리는 최고의 정성으로 여겨진다. 제삿상뿐 아니라 환갑이나 칠순 같은 큰 잔칫날에도 문어는 상석에 오른다. 문어를 삶는 일부터 써는 순서까지 지역마다 엄격한 규범이 남아 있을 정도다.
문어는 외형은 연약해 보이지만, 생존 본능은 단단하고 치열하다. 천적이 나타나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먹물을 뿌리고, 바위 틈으로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지만 가장 연약한 지점을 정확히 찌르면 한순간에 무장해제된다. 자연이 보여주는 절묘한 균형이다. 세상 모든 생명은 강한 부분과 약한 부분을 동시에 지닌다. 문어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문어는 바다생물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다. 겉은 유연하지만 속은 정밀하고, 생존은 치열하지만 약점은 분명하다. 머리를 찌르면 순해진다. 바다의 왕자에게도, 그렇게 반전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