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남아도는 쌀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정책결정자 외에는 많지 않다. 피부로 와 닿는 일이 아닌 데다 농민들도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동정론이 섞이면서 문제가 방치되고 있다. 쌀 소비량은 줄어드는데 생산량은 그대로고, 정부는 이를 매입해 창고에 보관한다. 보관 비용은 매년 수백억 원씩 증가하고, 결국 일부는 폐기된다.
2023년 5월, 전북 김제의 정부양곡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해 300t의 쌀이 전소됐다. 정부는 이를 전량 폐기했지만, 이를 두고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겉으로는 "아깝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누구의 책임도 아닌 자연스러운 손실로 반기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과잉 생산된 쌀을 북한으로 보냈다. 하지만 북한으로 보내진 쌀이 군사적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논란이 일면서 중단됐다. 이후 쌀 소비는 지속적으로 감소했지만, 생산량 조절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전에는 "밥 한 톨도 농부의 땀이 서려 있다"며 아꼈지만, 이제는 창고에 쌓였다가 보관비를 들여 결국 버려지는 실정이다.
한때 농협 직원들은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해 일부러 식당에서 밥그릇에 반찬을 묻혀 남기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버려진 쌀이 많아야 소비가 증가하고 가격이 유지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노력조차 무의미해졌다. 식생활 변화로 인해 쌀 소비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남는 쌀을 더 매입해야 한다는 양곡관리법이 다시 추진되고 있다. 농민들은 일정한 보상을 받으니 업종 전환을 고려할 필요가 없고, 쌀 생산은 지속된다. 결국 보관할 쌀이 늘어나면서 악순환이 이어진다. 보관 비용도 2019년 905억 원에서 2023년 1,187억 원으로 증가했고, 2030년에는 연간 1조 4,000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창고 상황도 심각하다. 저온창고는 전체의 3%에 불과하며, 30년 이상 된 노후 창고가 77%에 달한다. 시설이 노후화되면서 화재와 병충해가 빈번해졌다. 김제 화재처럼 불이 나면 "혈세 낭비"라는 비판이 제기되지만, 일부에서는 이를 불가피한 재고 감소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있다.
전국 약 2,800개 공공비축창고 중 상당수가 포화 상태이며, 2024년 양곡 매입·관리비로만 3조 1,858억 원이 투입됐다. 쌀 소비는 줄어드는데 생산량이 조정되지 않으니, 쌀이 창고에 쌓이고 보관 비용만 증가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국이어서 매년 약 40만 이상의 쌀을 수입해 역시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
남는 쌀을 아프리카에 보내자는 의견도 있지만, 수송비가 창고 보관비보다 더 들어 현실성이 없다. 한국의 쌀 자급률이 105%인 반면, 밀과 콩의 자급률은 각각 1.3%, 20.9%(2022년 기준)에 불과하다. 농민들은 기계화율이 높은 벼농사를 선호해 감축도 쉽지 않다. 벼농사는 기계화율이 99%지만, 밭농사는 63.3%에 불과해 노동력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양곡관리법이 농민들에게 일정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제도가 농민들에게 쌀농사에 안주할 명분을 주면서 과잉 생산을 부추기고 있다. 결과적으로 창고 비용은 계속 증가하고, 마지막에는 폐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
단순 매입 방식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 대체 작물 재배를 적극 장려하고, 시장 원리에 맞춰 쌀 가격이 형성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더 이상 쌀을 창고에 쌓고, 보관비를 들여가며 결국 폐기하는 정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쌀창고에 불이 나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과잉 생산을 방지할 수 있는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