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산업이 전반적인 침체를 겪는 상황에서, 금호석유화학은 이례적으로 흑자를 기록해 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해 이 회사는 약 7조 원의 매출과 2,700억 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등 국내 주요 화학기업이 적자 행진을 이어간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실적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함의가 있다. 금호석화는 석유화학 산업의 주력 제품인 범용 플라스틱 대신, 합성고무라는 특수소재에 집중해왔다. 이른바 '선택과 집중'. 누구나 말은 쉽게 하지만, 시장이 호황일 때도 그 방향을 지켜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합성고무는 원유에서 뽑아낸 화학물질을 조합해 만든 인공 고무다. 천연고무보다 내구성과 물성 조절이 뛰어나 자동차, 의료, 산업용 소재로 널리 사용된다. 특히 의료용 장갑에 쓰이는 NB라텍스는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이 낮고 신축성이 뛰어나 대표적인 고기능 소재로 꼽힌다. 금호석화는 이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이다.
중국의 과잉설비 증설은 범용 플라스틱 가격을 무너뜨리고 있다. 대량 생산 체제를 무기로 한 중국은 저가 공세로 글로벌 공급과잉을 유발했고, 많은 기업들이 이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 LG화학은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으며, 롯데케미칼은 3년 연속 적자다. 한화솔루션 또한 지난해 적자 전환됐다. 하지만 금호석화는 고기능성 소재라는 틈새시장을 선택했고, 이 전략이 현재의 결과로 이어졌다.
전기차 보급이 늘면서 타이어 수요도 변화하고 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무겁고, 즉각적인 가속 특성 탓에 타이어 마모가 빠르다. SUV의 지속적인 인기와 맞물려, 고성능 합성고무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 이는 특정 산업에 대한 의존이 아닌, 수요처의 다변화를 뜻한다.
금호석화는 2015년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이후, 기존의 반도체 소재 사업을 정리하고 합성고무에 사업역량을 집중했다. 단일 품목 중심이지만, 세분화된 제품 전략과 친환경 생산라인 구축, 고부가가치 확보라는 흐름을 유지했다. 현재 이 회사의 매출 중 약 60%는 합성고무에서 발생하고 있다.
석유화학 산업은 원재료를 뽑는 전단계와 이를 가공해 제품을 만드는 후단계로 나뉜다. 대부분의 대형 화학사는 원유를 쪼개 기초소재를 생산하는 전단계에 집중한다. 이 구조는 경기 호황기에는 큰 이익을 주지만, 공급과잉 시기엔 타격이 크다. 금호석화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후단계, 즉 가공·완제품 중심의 전략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 사례는 우리의 삶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방향을 바꾸는 것은 늘 위기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방향을 정한 후 그 길을 꾸준히 걷는 것, 그것이 생존을 넘어 지속가능한 성장을 만든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물량이 아니라, 더 정확히 바라본 방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