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의 중심은 늘 미국이었다. 달러를 쥔 나라의 결정은 곧 세계 시장의 운명을 갈랐다. 특히 지난 80여 년 동안 미국은 주요 고비마다 금융질서를 새로 짜거나 기존 질서를 뒤흔들어왔다. 이른바 ‘글로벌 머니게임’의 규칙은 대개 위기 이후 미국에 의해 다시 쓰였다. 아래 여섯 사건은 그 대표적인 장면들이다.
첫 번째는 브레튼우즈 체제의 수립(1944)이다. 제2차 세계대전 말, 미국은 달러를 중심으로 한 금본위 국제통화체제를 만들었다. 금 1온스를 35달러로 고정하고, 각국 통화는 달러에 연동시키는 방식이었다. 미국은 금을 담보로 달러를 찍고, 전 세계는 이를 외환보유로 받아들였다. 이로써 달러는 금을 대신하는 세계의 기축통화가 됐다. 브레튼우즈는 달러 패권의 출발점이었다.
두 번째 사건은 닉슨 쇼크(1971)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전후 부흥기에는 잘 작동했지만, 1960년대 들어 미국의 막대한 베트남 전쟁 지출과 무역적자가 누적되면서 달러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1971년 8월, 닉슨 대통령은 금태환 중지를 전격 발표하며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식을 선언했다. 이른바 ‘닉슨 쇼크’다. ‘달러는 금이다’라는 약속이 무너지고, 세계는 고정환율에서 변동환율 체제로 전환되었다. 달러는 이제 금이 아닌, 신뢰와 미국의 경제력에 기반한 통화로 자리 잡았다.
세 번째는 플라자 합의(1985)다. 1980년대 초 미국은 무역과 재정의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은 G5 국가들과의 공조를 통해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기로 합의한다. 이 합의가 바로 플라자 합의다. 이후 달러는 급속히 절하되고, 엔화와 마르크 등 주요 통화가 강세로 돌아섰다. 특히 일본의 엔고는 부동산과 주식시장 버블을 촉발했고,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으로 이어졌다. 이 사건은 외환시장이 단순한 시장 논리만으로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준 계기였다.
네 번째는 아시아 외환위기(1997)다. 1990년대 들어 신흥국에는 미국발 자본이 쏟아져 들어왔다. 높은 수익률을 좇은 외국 자본은 단기간에 외환과 부동산, 주식시장에 몰렸다. 그러나 1997년 태국을 시작으로 통화가 급락하자 자본은 급격히 빠져나갔고, 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전역으로 위기가 확산됐다. 미국은 IMF를 통해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설계했고, 이들 국가는 고금리 정책, 자산매각, 금융시장 개방 등을 조건으로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다. 위기의 원인도, 해법도 미국의 구상 안에 있었다.
다섯 번째는 리먼브러더스 파산(2008)이다. 2000년대 중반, 미국에서는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이 급증했다. 위험한 대출이 자산유동화 과정을 거쳐 파생상품으로 변형되면서, 월가는 거대한 버블을 키워갔다. 2008년 9월, 미국 4대 투자은행 중 하나였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됐다. 이 사태는 실물경제까지 강타했고, 각국 정부는 대규모 재정투입과 금리 인하,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이를 수습해야 했다. 월가의 위기는 곧 세계의 위기가 됐다.
여섯 번째는 미 연준의 무제한 양적완화(2020)다. 2020년 초 전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 충격에 빠지자, 미국 금융시장도 붕괴 조짐을 보였다. 이에 연준(Fed)은 사상 처음으로 ‘무제한 양적완화(QE)’를 선언했다. 기준금리를 0%로 낮추고, 국채와 모기지채권을 무한정 매입하겠다는 것이다. 이 조치는 곧 세계 자산시장 전반에 유례없는 버블을 일으켰고, 이후 장기 인플레이션의 도화선이 되었다. 위기 속 유동성의 폭발적 공급은 미국 중심 질서의 작동 방식을 다시 한번 드러낸 장면이었다.
이 여섯 사건은 모두 위기를 계기로 미국이 글로벌 금융규칙을 다시 쓰는 방식으로 귀결됐다. 미국은 때론 해결사로, 때론 발화점으로 작동했지만, 언제나 최종 결정권자였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세계 금융질서란 결국 달러를 중심으로 설계된 권력구조이며, 그 힘은 위기 때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