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보이지 않는 힘, 로봇 관절이 산업을 움직인다

news1657 2025. 5. 12. 09:32
728x90
반응형

칼럼 이미지 사진 89

 

로봇이 걷고, 팔을 뻗고, 병원에서 수술까지 하는 시대다. 인공지능이 똑똑해졌다고들 말하지만, 그 똑똑한 머리를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건 따로 있다. 바로 ‘로봇 관절’이다.

 

로봇을 구성하는 두 축이 있다면 하나는 뇌, 다른 하나는 관절이다. 뇌는 인공지능이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인간의 인지 능력을 이미 능가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이 지능이 실제 세계에서 사람처럼 작동하려면 반드시 정교한 운동 관절이 필요하다. AI가 뇌를 만들었다면, 관절은 몸을 현실화하는 열쇠다. 이 때문에 로봇 관절 산업은 로봇 진화의 핵심 기술 분야로 부상하고 있다.

 

사람이 어깨를 돌리고 팔꿈치를 접을 수 있듯, 로봇도 부드럽게 움직이려면 여러 개의 관절이 필요하다. 최근 주목받는 ‘다관절 로봇’은 이러한 유연한 움직임을 구현하는 기술의 집약체다. 기계가 아니라 사람처럼 움직이게 만드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관절은 로봇에서 가장 복잡하고 정밀한 부품이다. 단순히 꺾이게 해주는 구조가 아니다. 관절 안에는 감속기, 모터, 제어 장치 등 고도의 메커니즘이 집약돼 있다. 특히 반도체 공장이나 수술실처럼 1mm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공간에선, 이 관절이 인간보다 더 정밀하게 움직여야 한다. 눈에 띄진 않지만, 산업의 품질과 정밀도를 결정짓는 핵심 승부처다.

 

이 분야의 기술 선두는 여전히 일본이다. 하모닉드라이브(Harmonic Drive Systems)는 전 세계 정밀 감속기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며 로봇 관절의 심장을 공급해왔다. 독일의 보쉬 렉스로스, 스위스의 ABB 등도 핵심 부품과 모듈 분야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주요 로봇 부품의 7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해온 후발주자다.

 

하지만 최근 국내 기업들의 추격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레인보우로보틱스, 두산로보틱스, 현대로보틱스, 뉴로메카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정밀 감속기부터 AI 연동 제어 기술까지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두산로보틱스는 글로벌 협동 로봇 시장에서 기술 경쟁력을 인정받으며 북미·유럽 시장 진출을 확대 중이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협동 로봇 외에도 보행 보조 로봇, 의료 보조 로봇 등으로 적용 분야를 넓히고 있다.

 

관절 기술이 필요한 곳은 생각보다 훨씬 넓다. 병원에서 의사를 보조하는 수술 로봇,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라인에서 극미세 부품을 조립하는 공정 자동화 로봇, 노인을 돕는 간병 로봇, 커피를 내리는 서비스 로봇까지. 이들 대부분은 정밀한 다관절 기술 없이는 움직일 수 없다. 특히 반복적인 고강도 작업이나 섬세한 보조 동작이 필요한 영역에선 관절의 회전력, 감속 정밀도, 진동 제어력이 성능을 좌우한다.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글로벌 다관절 로봇 시장은 2030년까지 약 1,000억 달러(130조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그 중심에는 관절 기술 확보를 둘러싼 각국의 경쟁이 있다. 일본의 기술 독점에 도전하는 한국 기업들이 늘고 있으며, 일부 기술은 이미 수입 대체를 넘어 수출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관절을 누가 선점하느냐가 곧 로봇 산업의 주도권을 좌우하는 시대다. 관절을 본다는 건 로봇 산업의 기반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관절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로봇은 사람처럼, 혹은 사람보다 더 능숙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그렇게 진화한 로봇은 제조·서비스·의료 등 전 산업의 판을 다시 짠다.

 

로봇이 아무리 똑똑해도 움직이지 않으면 소용없다. 움직임의 핵심은 관절이다. 보이지 않지만 로봇의 가치를 결정하는 힘, 그 조용한 기술 경쟁이 지금 산업의 지도를 바꾸고 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