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삼성전자는 조용히 노트북 시장에서 발을 뺐다.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노트북 판매를 중단했고, 이후 글로벌 제품 출시도 자취를 감췄다. 당시 삼성의 판단은 명확했다. ‘PC 시대는 끝났고, 태블릿이 대세다’는 흐름을 읽은 것이다. 태블릿 시장은 당시 급격히 팽창하고 있었고, 모바일 중심 생태계는 IT 업계의 미래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면, 삼성의 전략은 명백한 오판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태블릿은 예상만큼 성장하지 못했고, 오히려 노트북 시장은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재도약의 계기를 맞았다. 업무와 교육, 콘텐츠 소비가 모두 노트북으로 수렴되면서 수요가 다시 활기를 띠었다. 애플은 M1 칩을 앞세워 맥북을 재정의했고, HP·레노버·델은 글로벌 시장을 확고히 장악했다. 삼성전자는 이 경쟁에서 철저히 뒤처졌다.
현재 글로벌 노트북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시장조사기관들의 분석에 따르면 삼성의 점유율은 1% 수준에 그친다. 반면 국내 시장에서는 여전히 삼성전자 노트북이 대세다. 2023년 기준 국내 점유율은 50%를 웃돈다. 이 같은 구조 탓에 한국 노트북 시장은 ‘갈라파고스’라는 말까지 나왔다. 외국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제품을 한국인만 열렬히 사용하는 기형적 구조다.
삼성의 철수는 단순한 판매 중단이 아니었다. 노트북을 포기하며 자연스럽게 PC 부품 생태계와도 멀어졌다. 디스플레이, 배터리, SSD 등을 자체 공급하면서도 글로벌 표준 논의에서 배제되는 부작용이 따랐다. 노트북 시장은 단순한 완제품 수준에 국한되지 않는다. 운영체제, 인터페이스, 부품 사양, 칩셋 설계 방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런 장에서 삼성은 10년 가까이 침묵했다.
물론 기업의 전략적 판단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다. 태블릿에 집중해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기술을 키웠고, 갤럭시 브랜드는 여전히 글로벌 시장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서도 독보적인 입지를 굳혔다. 모든 전장에서 동시에 승부를 걸 수 없다는 현실은 분명 있다. 하지만 노트북 시장을 전면 포기한 결정은 지나치게 성급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아이러니한 것은, 세계 1위 반도체와 스마트폰 기업이 노트북 시장에서는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격차는 다시 세계 표준에서의 영향력 저하로 이어진다. 하드웨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윈도우 생태계에서의 협업, 인공지능 PC 시대의 전환 대응 등 전략적 유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삼성 노트북을 사랑하는 한국 소비자들의 애정은 각별하다. 디자인, 무게, 감성까지 고려한 사용성은 높게 평가받는다. 그러나 국내 소비만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회복할 수는 없다. 삼성전자가 노트북에서 물러선 10년, 그 빈자리는 애플과 HP, 레노버가 채웠다. 세계는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는다.
노트북 시장에서 물러났던 단 한 번의 선택이 10년 뒤 삼성전자의 글로벌 영향력에 균열을 남겼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며, 기술 산업에서는 그 대가가 때때로 기업의 사운을 좌우한다. 10년 전 삼성의 결정은, 전략적 판단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