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0일부터 민간이 짓는 아파트도 에너지 자립률을 갖춘 ‘제로에너지건축물(ZEB)’ 기준을 적용받는다. 지금까지 공공건축물에만 적용되던 제로에너지 설계 의무화가, 앞으로는 30세대 이상 민간 공동주택 신축 시에도 ZEB 5등급 수준의 기준을 따라야 한다.
제로에너지건축물은 고단열 설비와 고효율 기기(패시브·액티브 기술), 태양광·지열 등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조합해 건물의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고 일부를 자체 생산하는 구조다. 정부가 민간에 적용하는 이번 기준은 ZEB 5등급 인증 그 자체는 아니지만, 이에 준하는 자립률(13~17%)을 의무화한 것이다.
건설사들도 흐름을 따르려 하지만, 공사비 상승 부담은 여전하다. 고단열 창호, 고효율 냉난방 시스템, 에너지저장장치(ESS), 태양광 패널 등 친환경 설비 적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업계는 전용면적 84㎡ 기준으로 세대당 약 130만~293만원의 추가 공사비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분양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배경이다. 특히 최근 자재비와 인건비 상승이 이어지는 가운데 ZEB 설계까지 의무화되면 소비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게 업계 입장이다. 건설사들은 인증 대신 의무화된 최소 기준만 충족하려는 소극적 대응에 머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제로에너지 아파트는 장기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대표 사례인 인천 송도의 힐스테이트 레이크송도는 국내 최초로 고층형 ZEB 5등급 인증을 받은 아파트다. 이 단지는 태양광 패널과 고효율 설비를 통해 에너지 자립률 23.37%를 달성했고, 입주민 관리비는 인근 아파트보다 월평균 10만원 이상 저렴한 수준이다.
K-apt 공동주택관리시스템에 따르면 레이크송도의 3월 관리비는 인근 유사 단지보다 ㎡당 전기요금이 279원, 전체 관리비는 1278원 더 저렴했다. 전용면적 84㎡ 기준으로 연간 120만~130만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입주민이 체감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부동산 자산가치 평가 기준이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미국의 LEED나 유럽의 EPC처럼, 건물의 에너지 효율과 친환경 성능이 매매가와 임대료를 결정하는 핵심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이 같은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제로에너지 기술은 이미 대형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현대건설, GS건설, DL이앤씨 등은 고단열 외피, 스마트 조명, 태양광 시스템, 인공지능 기반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BEMS) 등 다양한 기술을 시험 적용 중이다. 특히 GS건설은 초고효율 LED에 IoT 기반 제어 시스템을 더해 에너지 소비를 최대 50% 줄이는 기술을 선보였다.
국토부에 따르면 제로에너지건축물 예비·본인증을 받은 공동주택은 151건에 불과하다. 이 중 본인증까지 완료한 고층형 아파트는 단 5곳에 지나지 않는다. 보급이 아직 초기 단계여서, 소비자와 시장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으로 아파트 선택 기준은 평수와 위치뿐 아니라, 에너지 효율성도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얼마나 에너지를 아끼고, 스스로 생산하느냐가 가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다. 6월부터 달라지는 제로에너지 설계 의무화는 그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