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종자유출 막으려다 로스팅 문화가 탄생

news1657 2025. 3. 1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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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미지 사진 29

 

자연 상태의 커피콩은 옅은 노란색을 띠지만,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검은색이다. 노란빛을 띠던 커피콩이 검은콩으로 변한 과정에는 흥미로운 역사가 담겨 있다. 이디오피아에서는 9세기경 커피가 처음 발견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이후 예멘으로 전파되어 이슬람 세계에서 널리 소비되기 시작했다. 이후 오스만제국의 무역과 교역을 통해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음주가 금지되었기에 커피는 각성 효과를 지닌 대체 음료로 환영받았다. 메카 순례자들 사이에서 커피는 명상과 기도를 돕는 중요한 음료로 여겨졌고, 자연스럽게 메카 부근에는 커피하우스가 등장했다. 이곳은 학자들과 상인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가 되었으며, 오스만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에서도 커피는 생활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이슬람권의 결혼 문화에서도 커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남녀가 맞선을 볼 때 예비 신부는 직접 커피를 대접해야 했으며, 신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금을 넣어 거절의 뜻을 나타냈다. 터키에서는 결혼 서약에서 남자가 평생 아내에게 커피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할 정도로 커피는 신뢰와 책임을 상징하는 요소였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커피는 맑은 노란빛의 음료였다.

 

오스만제국이 유럽과의 교역을 확대하면서 17세기 초반 유럽인들도 처음으로 커피를 접했다. 커피의 인기가 예상보다 급속히 확산되자, 오스만제국은 종자 유출을 막기 위해 생두가 아닌 볶은 원두만을 수출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 과정이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로스팅 커피 문화의 시초가 되었다. 당시 유럽인들은 처음부터 볶아진 커피만을 접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로스팅된 커피가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예멘은 당시 커피 수출의 중심지였으며, 주요 항구였던 모카(Mocha)의 이름은 이후 커피 브랜드명으로 자리 잡았다. 유럽에서는 커피가 빠르게 대중화되었고, 각국의 문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진한 커피를 추출하는 에스프레소가 등장했고, 이를 연하게 마시는 아메리카노, 우유를 넣은 라떼 등의 변형이 이어졌다. 네덜란드는 커피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하며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커피 농장을 운영했다.

 

17세기 후반부터 커피는 유럽 왕실과 귀족 사회에서 필수적인 음료로 자리 잡았다. 프랑스의 루이 14세 시대에 커피는 궁정에서 귀족들 사이에 인기를 끌었으며, 이를 계기로 귀족 사회에서도 커피 문화가 확산되었다. 한편, 영국에서는 17세기 중반 런던에 커피하우스가 급격히 증가하며 학자, 상인, 정치인들이 모여 토론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유럽이 커피 종주국처럼 인식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커피가 검은콩이 된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이 깔려 있다. 오스만제국은 커피 무역을 통제하기 위해 생두 대신 볶은 원두를 주로 수출했고, 이를 계기로 현대적인 로스팅 커피 문화가 형성되었다. 유럽은 이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커피 문화를 발전시켰고, 오늘날 커피 종주국처럼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마시는 한 잔의 커피에는 이디오피아 목동의 발견과 예멘 상인의 전파, 오스만제국의 보호 전략, 그리고 유럽의 재해석이 함께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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