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를 떠다니는 선박은 거대한 공장과 같다. 수천 개의 부품이 맞물려 움직이고, 작은 고장 하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바다 한가운데에서 필요한 부품을 바로 조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를 해결할 기술이 등장했다. 바로 3D 프린팅이다.
최근 HD현대중공업이 국내 최초로 운항 중인 선박에서 직접 부품을 제작하는 3D 프린팅 실증에 성공했다. 이제 선박은 항구에 들르지 않아도 필요한 부품을 자체 생산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했다. 기존 방식은 번거롭다. 선박은 항해 전에 각종 예비 부품을 싣고 출항해야 했다. 그러나 어떤 부품이 고장 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모든 부품을 싣는 것은 불가능했다. 부품이 부족하면 결국 항구로 돌아와야 하고, 이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 손실로 이어졌다. 3D 프린팅 기술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강력한 대안이다.
3D 프린팅은 기존 절삭 가공 방식과 다르다. 원하는 부품을 디지털 설계도로 만들어 한 층씩 쌓아 올리는 방식이다. 불필요한 소재 낭비를 줄일 수 있고, 복잡한 형상의 부품도 쉽게 제작할 수 있다. 빠르고, 정확하며, 경제적으로 제작이 가능하다. 조선업계는 이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으며, 기존 방식 대비 부품 제작 기간이 최대 40% 단축될 수 있다고 평가된다.
특히 이번 HD현대중공업의 실증 성공은 의미가 크다. 선상에서 직접 3D 프린터를 활용해 부품을 제작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선박이 고장 나면 수리가 가능한 항구까지 가야 했지만, 이제는 선박 내부에서 즉시 제작해 교체할 수 있다. 이는 시간과 비용 절감은 물론, 긴급한 상황에서도 선박의 운항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3D 프린팅을 활용하면 친환경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조선업은 전통적으로 많은 자원을 소비하는 산업이지만,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하면 소재 낭비를 줄이고, 탄소 배출량도 감소시킬 수 있다.
이 기술이 보편화되면 선박 운영 방식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지금까지 선박은 장거리 운항 시 유지·보수를 위해 필요한 부품을 미리 적재해야 했다. 그러나 3D 프린팅 기술이 상용화되면 이러한 부담을 덜 수 있다. 이는 물류 비용 절감과 함께 선박 운영의 유연성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또한 선박이 항구에 정박하는 시간을 줄여 전반적인 운항 효율성을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과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현재 3D 프린팅이 가능한 소재의 종류가 제한적이며, 대형 부품 제작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3D 프린팅이 조선업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제 선박 유지·보수 방식은 혁신을 맞이했다. 머지않아 3D 프린팅이 조선업뿐만 아니라 해양 플랜트, 선박 개조, 해상 구조물 제작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될 것이다. 특히 해양 사고 발생 시 긴급한 복구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3D 프린팅 기술은 강력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