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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 46

숨 한 번으로 바닷속에서 10여 분 잠영하는 바자우族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남부 해역에는 바다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수상가옥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땅보다 물을 더 가까이 두고 살아간다.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고 조개를 캐며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은 바자우(Bajau)라고 불리는 수상 민족이다. 전통적으로 배 위나 해상 주택에서 생활해 온 이들은 땅에 정착하지 않고 바다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독특한 문화를 이어왔다. 바자우 족은 별다른 잠수 장비 없이, 맨몸으로 수심 수 미터 아래에서 10여 분간 잠영이 가능하다. 일반인의 기준에서 보면 거의 믿기 힘든 수치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물속에서 30초에서 1분 정도 숨을 참을 수 있다. 심호흡을 한 뒤에도 1분을 넘기기 어렵고, 훈련된 수영선수나 프리다이버조차 2~3분 이상 버티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인문학 2025.03.31

자연의 청소부들, 죽음을 먹고 생명을 잇는다

자연계에는 사냥도 채집도 하지 않고, 오직 죽은 동물의 사체만을 먹는 생물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청소동물(scavenger)’이라 부른다. 그중에서도 스스로 먹이를 사냥하지 않고, 이미 죽은 뒤에야 접근하는 청소 전문종들이 있다. 이들은 인간에게 혐오감이나 불쾌함을 주기도 하지만, 생태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대표적인 예가 독수리다. 독수리는 날카로운 부리와 넓은 날개를 가진 맹금류지만, 일반적인 의미의 사냥은 하지 않는다. 대신 병든 동물이나 이미 죽은 사체를 찾아 하늘을 선회한다. 머리에 깃털이 없는 ‘대머리’ 형태도 독특하다. 이는 사체를 뜯어먹을 때 피나 체액이 깃털에 묻지 않도록 진화한 결과다. 한국어에서 ‘독수리’라는 말은 ‘수리’와 혼용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수리’는 ..

인문학 2025.03.30

인간을 전시했던 시대, 클림트 초상화가 던지는 질문

188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인종 전시회 당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초상화 한 점이 공개됐다. 주인공은 아프리카의 한 부족 출신 왕자다. 이 작품은 2021년, 한 수집가가 빈의 갤러리에 반입하면서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복원과 감정을 거쳐 클림트의 진품으로 최종 확인됐다. 현재 판매가는 약 240억 원에 이른다. 작품의 미술사적 가치도 크지만, 이 초상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그려졌던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클림트는 이 그림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인종 전시회’ 기간에 제작했다. 이 전시회는 단순한 문화 교류의 장이 아니었다. 식민지 출신 사람들을 울타리에 가둬놓고, 대중이 ‘이국적인 존재’로 구경하고 소비하게 만든 이른바 인간동물원의 일환이었다. 19..

인문학 2025.03.29

불타는 숲, 살아나는 생명… 산불의 두 얼굴

경북 지역을 휩쓴 대형 산불이 주택가를 덮치고 인명 피해까지 내며 비극으로 이어졌다. 뉴스 화면을 가득 메운 연기와 불길은 국민 모두에게 충격을 안겼다. 산불은 언제나 재난으로 인식된다. 꺼야 하고, 막아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자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간섭이 없던 시절, 산불은 수천 년 동안 반복돼 온 생태계 순환의 일부였다. 태양열, 마찰, 낙뢰 등으로 시작된 자연 발화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꺼진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거나 습도가 오르고, 탈 수 있는 연료가 바닥나면 불은 자연스럽게 진화된다. 불은 때로 스스로를 통제하는 자연의 일부였다. 이 과정을 통해 고사한 식물은 사라지고, 토양은 새로운 영양분을 얻는다. 빽빽한 수목 아래 햇빛이 닿지 않던 땅에는 다시 광합성이 시..

트렌드 2025.03.28

플라톤의 동굴우상으로 대한민국을 돌아본다

요즘 한국 사회는 마치 거대한 동굴 속에 갇힌 듯하다. 사회 곳곳에서 이념과 진영 논리에 따른 갈등이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다. 시민들은 각자 자신이 믿는 정보와 해석에만 몰입한 채, 다른 시선은 틀렸다고 단정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진실을 보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이러한 현상은 고대 철학자 플라톤이 2천 년 전 ‘동굴의 비유’를 통해 경고했던 모습과 닮아 있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 제7권에서 인간의 인식이 얼마나 제한적일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그는 인간을 동굴 속에 사슬로 묶여 벽만 바라보는 죄수에 비유했다. 이들은 바깥에서 비추는 불빛에 의해 비친 그림자만을 현실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실재하는 대상은 그 그림자를 만든 진짜 사물들임에도, 죄수는 그림자를 전부라고 착각한다. 만약 누군가가 용..

인문학 2025.03.28

새해 인사말에 담긴 비슷한 듯 다른 정서

한중일 세 나라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웃이다.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오랜 역사 속에서 문화 교류도 활발히 이어져 왔다. 그러나 새해 인사말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이 세 나라가 얼마나 다른 정서와 국민성을 지녔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인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한다. 중국인은 “신녠콰이러(新年快乐)”, 일본인은 “아케마시테 오메데토 고자이마스(あ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라고 인사한다. 겉으로는 모두 한 해의 시작을 기념하며 서로에게 덕담을 건네는 말 같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정서는 확연히 다르다. 단순한 인사말 하나에도 각 나라 고유의 삶의 태도와 문화 철학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중국의 인사말 ‘신녠콰이러’는 직역하면 ‘즐거운 새해’다. 말 그대로 ‘행복한 한 해’를 기원하는 표현..

인문학 2025.03.27

무기에서 돈 버는 산업이 된 군용헬기

군용헬기가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한때 전장의 상징이던 블랙호크 헬기가 이제는 수출과 리모델링, 민간사업까지 아우르는 사업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방위사업청이 발표한 헬기 36대 성능개량 사업은 단순한 교체가 아닌, 국내 헬기산업의 지형을 바꿀 실험 같은 프로젝트다. 사업 규모는 약 9천억 원. 한 대당 제작비는 200억~250억 원에 달한다. 헬기 리모델링, 부품 공급, 성능 업그레이드까지 포함하면 시장은 수십 배로 확대된다. 현재 대한항공과 KAI가 경쟁에 뛰어들었고, 국산 헬기 수리온과 파생형 미르온도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이들이 군을 넘어 해외 수출 시장에 진입하면 본격적인 ‘돈 되는 산업’이 열린다. 하지만 수출은 말처럼 쉽지 않다. 2013년, KAI는 수리온의 남미·동유럽 수출을..

산업 2025.03.26

하인의 신혼집 벽지로 사용된 자산어보

흑산도 유배지에서 조선시대 실학자 정약전은 물고기를 관찰하고 기록했다. 서해 해류를 따라 이동하는 어종을 하나하나 살폈고, 백성들에게 도움이 될 내용을 정리했다. 자산어보는 그렇게 태어났다. 생선의 생김새, 서식지, 잡는 법, 맛까지 담겨 있었다. 조선 후기 민중을 위한 실용 지식서였다. 정약전은 형제 중에서도 과묵하고 책임감이 강한 인물로 전해진다. 동생 정약용도 강진에 유배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뭍으로 나와 그를 만나려 했다. 그러나 풍랑을 만나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정약용은 형의 사망 소식을 뒤늦게 듣고 흑산도로 향했다.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형이 남긴 자산어보를 발견했다. 하지만 책은 온전한 형태가 아니었다. 자산어보는 벽지로 변해 있었다. 정약전이 살던 유배지는 이..

인문학 2025.03.25

40대, 50대 사춘기… 사춘기는 나이순이 아니다

사춘기는 대개 중고등학생 시절에 오는 것이라 여긴다. 감정이 요동치고, 부모에게 반항하며,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방황하는 시기. 하지만 그 시기를 제때 겪지 못한 사람들에게 사춘기는 훨씬 늦게 찾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있다. ‘40대 사춘기’, ‘50대 사춘기’다. 심리학에서 사춘기는 단순한 반항기가 아니다. 자아가 ‘나는 누구인가’를 묻기 시작하는 정체성 탐색의 시간이다. 이는 청소년기에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반드시 그 시기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성찰의 여유와 조건이 허락되지 않으면, 사춘기는 얼마든지 유예될 수 있다. 가난, 가정폭력, 생계부양, 전쟁 같은 현실은 자아 형성을 가로막는다. 배고픔을 해결하고 가족을 돌보는 일이 먼저인 상황에서, 나는 누구인지 돌아볼 시간은 ..

인문학 2025.03.24

꽃잎과 나뭇가지에 숨겨진 수학 이야기

피보나치라는 사람이 자연에서 발견한 놀라운 숫자가 있다. 그의 이름을 따 ‘피보나치 수열’이라 부른다. 갑자기 왠 어려운 수학 이야기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 속에는 자연의 신비가 숨어 있다. 피보나치 수열은 앞선 두 수의 합이 다음 수가 되는 방식이다. 즉 1, 1, 2, 3, 5, 8, 13, 21, 34… 순으로 이어진다. 놀랍게도 이는 꽃잎이나 나뭇가지가 자라는 순서와 닮아 있다. 백합의 꽃잎은 3장, 제비꽃은 5장, 과꽃은 8장, 금잔화는 13장, 해바라기는 21장이나 34장의 꽃잎을 갖는다. 모두 피보나치 수다. 우연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자연은 이유 없이 반복하지 않는다. 움직일 수 없는 식물에게 꽃잎이나 가지가 서로 엉키지 않고 자라는 것은 생존의 문제다. 겹치지 않게 자라려면 일정한 각..

인문학 2025.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