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쌀 자급률이 100%에 가까운 일본이 최근 한국산 쌀을 수입했다. 지난해 여름부터 일본 내 쌀값이 치솟으며, 전남 해남산 ‘땅끝 햇살’ 브랜드 쌀 2t이 도쿄에 들어갔다. 소비자 판매용 한국 쌀이 일본에 수출된 것은 1990년 통계 집계 이래 처음이다. 농협은 현지 반응이 좋아 10t 추가 수출도 준비 중이다.
한일 양국 모두 자포니카 계열의 찰기 있는 쌀을 주식으로 삼으며, 쌀 자급률은 거의 100%에 이른다. 과잉공급을 걱정하던 나라가 쌀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의 현실은 다소 의외다. 기후변화, 관광객 급증, 곡물 전환 정책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지만, 핵심은 따로 있다. 바로 유통 구조다.
일본의 쌀 유통은 민간 경매 중심의 다단계 구조다. 농가에서 도정업체를 거쳐 민간 경매시장에 출하되고, 이후 도매업체, 가공업체, 대형 유통체를 지나야 소비자에게 도달한다. 이 구조에서는 일부 대형 유통업체가 경매에서 고가 낙찰 방식으로 물량을 선점하고, 중소 소매업체의 접근을 사실상 차단한다. 이 때문에 가격은 급등하고, 쌀은 시장에 풀리지 않는다.
도쿄 신오쿠보의 한인마트에서는 한국산 쌀이 입고 직후 곧바로 품절됐다. 일본산보다 10%가량 저렴한 데다, ‘찰기 있는 맛’이 입소문을 타며 소비자 관심이 집중됐다. 농협 온라인몰에서는 ‘재고 없음’ 안내문이 게시됐고, 오프라인 소매상들도 “도매 단계에서부터 물량이 막혀 있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유통을 민간 경매에만 의존하는 구조는 식량 안보 측면에서 취약하다. 대형 유통업체가 가격을 주도하는 시스템에서 소비자는 항상 불안정한 선택만 강요받게 된다.
한국은 농협을 중심으로 쌀 유통 체계를 통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농가는 미곡종합처리장(RPC)에 쌀을 출하하고, 이곳에서 도정·포장·보관까지 일괄 처리된다. RPC를 거친 쌀은 하나로마트, 대형마트, 온라인 플랫폼으로 유통된다. 가격은 정부 수매가와 농협 계약 가격에 따라 결정된다.
유통 구조가 단순하고 투명하기 때문에 시장 교란 가능성이 낮다. 수급 불균형이 발생하면 정부가 비축미 방출이나 수매 확대를 통해 적극 개입할 수 있다. 소비자 가격은 안정되고, 농가 소득도 보호된다.
최근 일본의 쌀값은 5kg당 4214엔, 14주 연속 상승 중이다. 외국인 관광객 증가, 지진 대비 사재기, 고온에 따른 생산 감소가 겹쳤다. 그러나 이는 단기 변수에 가깝다. 결국 구조적 문제는 유통에 있다. 쌀이 생산되더라도 제때 시장으로 유통되지 않으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없는 쌀’이 된다.
공공 중심의 유통망을 갖추지 않는 한 일본은 앞으로도 시장 교란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수 있다. 유통의 투명성과 개입 여지를 확보하는 것이 쌀값 안정을 위한 핵심이다.
일본은 매년 WTO 체제 아래 의무수입쌀(MMA) 할당 문제로 논란을 겪는다. 쌀을 수입하고도 소비하지 못한 채 폐기하거나 저장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공급은 충분한데도 시장은 불안정하다. 이는 결국 유통 구조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