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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귀는 공간도 해석하는 도구다.

우리는 귀로 소리만 듣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듣는 것뿐 아니라 공간도 해석한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귓바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조각한 듯한 굴곡이 이어진다. 가장 바깥을 따라 도는 곡선이 ‘이륜(helix)’이고, 귓구멍 앞에는 ‘이주(tragus)’라는 작은 돌기가 있다. 이륜의 안쪽으로는 두 줄기처럼 갈라지는 ‘대이륜(antihelix)’이 있는데, 특히 위아래 방향의 소리를 구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귓바퀴는 고주파를 반사시키는 하나의 음향 렌즈처럼 작동한다. 굴곡마다 반사되는 각도와 주파수가 다르다. 뇌는 이 차이를 통해 소리의 방향과 높이를 해석할 수 있는 단서를 얻는다. 덕분에 우리는 눈을 감고도 소리가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알 수 있다. 옆에서 나는 소리는 양쪽 귀 사이..

인문학 2025.06.05

LG 상속소송, 장녀 구연경 편에 선 언론은 왜 없나?

LG그룹은 ‘인화(人和)’를 중시한 고(故) 구본무 회장의 경영철학 덕분에, 타 재벌들에 비해 유난히 조용한 집안으로 유명했다. 구 회장 사후에도 장자 중심의 승계 관행에 따라, 친아들이 아닌 조카인 양자 구광모에게 경영권이 넘어갔고, 별다른 분쟁 없이 정리됐다. 그러나 2023년, 구 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와 두 딸, 장녀 구연경·차녀 구연수 씨가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LG가의 ‘조용한 승계’ 이미지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소송은 단순한 가족 간 재산다툼을 넘어, 한국 재벌의 승계 방식과 언론의 태도까지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가 미국 뉴욕타임스를 통해 억울함을 호소한 사실은, 국내 언론을 향한 불신과 무력감을 대변한다. 쟁점은 명확하다. 고..

기업 분석 2025.06.02

지역화폐와 기본소득, 경제 활성화의 두 얼굴

경제 활성화와 사회적 약자 지원이라는 목표를 지니며 꾸준히 주목받고 있는 정책들이 있다. 바로 지역화폐와 기본소득이다. 하지만 일반 시민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정책의 효과 역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지역화폐는 특정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대안 화폐다. 인천e음, 경기지역화폐, 파주페이, 익산다이로움 등 지자체가 발행하는 전자화폐나 쿠폰 형태가 대표적이다. 사용자는 지정된 지역 상점에서만 사용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지역 내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지역에서 번 돈을 다시 지역에 쓰자’는 개념이다. 성공 사례도 적지 않다. 인천e음은 2018년 시범 도입 후 2019년까지 누적 발행액이 1조 원을 넘겼다. 경기지역화폐도 중소상인 매출 회복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파주페이, 익산..

경제 2025.05.29

노쇼(no-show)도 경제가 되나요? 호텔경제학의 착시

최근 한 대선 후보가 유세 중 ‘호텔경제학’ 이야기를 꺼냈다. 한 관광객이 호텔 예약금 10만 원을 맡기고 방을 보러 간다. 호텔 주인은 그 돈으로 외상값을 갚는다. 돈은 식료품점, 치킨집, 신발가게, 빵집을 거쳐 다시 호텔로 돌아온다. 손님은 여행 계획이 바뀌었다며 예약을 취소하고 10만 원을 돌려받는다. 외부에서 들어온 돈은 없지만, 마을 안에서 거래가 여러 번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가 살아났다고 말한다. 이야기는 간단하고 이해도 쉽다. 그래서 더 그럴듯하게 들린다. “이게 지역화폐 효과다”, “기본소득도 이 원리로 돌아간다”는 설명은 경제를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에게 큰 설득력을 준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 더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정말로 그 돈이 마을 경제를 살렸는가? 첫째, 이 이야기에는..

경제 2025.05.28

한국은 활어회, 일본은 선어회…같은 듯 다른 식문화

일본인은 회를 좋아한다. 한국인도 회를 좋아한다. 그러나 같은 회를 먹는다고 해서 같은 음식을 즐긴다고 볼 순 없다. 한국인은 살아 있는 活魚회를 선호하고, 일본인은 하루 또는 이틀간 냉장 숙성한 鮮魚회를 즐긴다. 같은 생선 한 마리라도 도마 위에 오른 순간, 양국의 문화는 극명하게 갈린다. 한국인 중 상당수는 일본 여행을 가면 ‘회 종주국’에서 정통 회를 맛보겠다며 종종 스시집을 찾는다. 그러나 첫입부터 당혹스럽다. 회가 흐물거리고 탄력이 없다. 일부는 상한 것 아니냐며 오해하고, 음식점에 항의하는 경우도 있다. 선어 특유의 부드러움을 ‘변질’로 받아들인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국내 기업인들이 일본 바이어를 접대하겠다며 고급 일식집에 초대하지만, 종종 의외의 반응이 돌아온다. “질겨서 씹기 어..

인문학 2025.05.28

광고가 만든 계절 레시피, 도다리쑥국

봄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계절 음식 ‘도다리쑥국’. 입춘이 지나고 따스한 남풍이 불기 시작하면 남해안 식당가는 도다리쑥국 간판을 내걸고 손님맞이에 나선다. 도다리와 쑥, 두 재료가 만나 봄을 담아낸 이 메뉴는 제철 건강식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다. 그러나 이 음식의 레시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중의 인식과 실제 조리 목적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상업 마케팅’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자 오해의 음식이다. 우선 ‘봄 도다리’의 실체를 따져보자. 일반적으로 도다리는 봄이 제철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정확하지 않다. 도다리는 산란을 앞두고 2~4월 연안으로 몰려드는데, 이 시기의 도다리는 아직 성체가 되지 않은 어린 개체들이 대부분이다. 살집이 부족하고, 산란 직전 혹..

인문학 2025.05.27

엠브라에르, 브라질이 만든 세계 3대 항공기 회사의 비밀

브라질이 항공기를 수출한다고 하면 의아해하는 이들이 많다. 커피, 콩, 닭고기 같은 농산물만 잘 파는 줄 알았던 나라가 세계 민항기 시장에서 보잉, 에어버스 다음으로 손꼽히는 제조사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주인공은 엠브라에르(Embraer). 지난해 한국 공군이 차기 수송기 사업에서 미국의 록히드마틴을 제치고 엠브라에르의 KC-390을 선택하면서 이 회사는 한국에서도 화제가 됐다. 엠브라에르는 브라질 공군의 기술기관인 항공기술연구소(ITA)와 항공우주기술연구소(DCTA)에서 배출된 인재들을 중심으로 1969년 설립됐다. 미국 MIT를 모델로 만들어진 ITA는 까다로운 입시와 탄탄한 공학 교육으로 유명한 엘리트 기관이다. 여기에 군 연구기관 DCTA가 결합해 고급 항공기술 기반이 ..

경제 2025.05.26

트럼프의 변심? 일본제철, US스틸 인수의 의미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보호무역 기조를 강화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의외의 결정을 내렸다. 전략 산업으로 간주되는 미국 철강회사 US스틸의 일본제철 인수를 승인한 것이다. 이는 전임 바이든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불허했던 사안이다. 트럼프가 입장을 바꾼 배경은 무엇일까. US스틸은 1901년 설립된 미국 철강산업의 상징적 기업이다. 한때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고, 미국 제조업의 자존심으로 불렸다. 작년 말 일본제철이 US스틸 인수 계획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철강업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일본제철은 미국 내 생산기반을 확보하고 북미 시장에서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인수를 추진해 왔다. 특히 전기차 확대와 인프라 투자 증가로 강판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미국 현지 생산거점을 ..

경제 2025.05.24

삼성바이오 인적분할과 지주회사 설립의 의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회사를 나눴다. 기존 사업에서 복제약(바이오시밀러) 부문을 떼어내 새로운 회사 ‘삼성에피스홀딩스’를 만든다는 발표다. 이번 분할은 기존 주주가 새 회사의 주식도 똑같이 나눠 갖는 ‘인적분할’ 구조다. 회사는 나뉘지만, 주주 입장에서는 손해가 없다. 오히려 더 깔끔한 구조로 바뀌는 셈이다. 참고로 물적분할은 모회사가 새 회사를 만들어 지분을 모두 보유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신설회사가 상장하면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가 줄어드는 문제가 생겨, 종종 소액주주들의 반발을 불러온다. 이런 점에서 삼성바이오가 인적분할을 선택한 것은 주주 신뢰를 고려한 결정으로 볼 수 있다. 분할의 이유는 분명하다. 삼성바이오는 의약품을 대신 만들어주는 CDMO(위탁개발생산) 사업과 복제약을 개발해 판매하는 바이오시..

산업 2025.05.22

뻐꾸기는 이기적이다?...자연의 지혜가 담긴 번식 전략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새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자신의 둥지를 짓지 않고 개개비나 휘파람새 같은 다른 새 둥지에 알을 맡기는 번식 방식을 탁란(托卵)이라 부른다. 이러한 생태적 특성 때문에 뻐꾸기는 오래전부터 무책임한 존재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뻐꾸기를 보낸다"는 표현은 은밀한 관계나 책임 회피를 뜻하는 속어로 쓰이고, 뻐꾸기 수컷은 유혹만 하고 떠나는 바람둥이의 이미지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뻐꾸기의 실제 생태는 이런 통념과는 많이 다르다. 한 마리 새끼를 키우는 데 드는 자원과 시간, 그리고 위험 부담 등을 고려할 때, 뻐꾸기의 탁란은 새끼를 직접 기르는 방식보다 훨씬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측면이 있다. 조류학계 연구에 따르면 탁란 방식이 직접 육아보다 버려지는 알..

인문학 202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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